지수중학교 철학수업(76)

by 김준식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6. 근대성(Modernity)[1]을 향하여


근대와 이전 시대를 구분하는 여러 기준 중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은 17세기 무렵의 과학의 발전이지만 근대라는 기초 속에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노력도 포함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 근대의 서막


16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이탈리아를 넘어선 르네상스의 기운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기는 했지만 르네상스 운동을 중세에 포함시키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근대에 편입시키기도 곤란한 운동이었다. 따라서 르네상스 운동의 파급을 근대의 징표로 삼기는 곤란하다.


근대의 속성, 즉 근대성을 몇 개의 짧은 문장으로는 표현하기는 어렵다. 먼저 근대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인 ‘Modernity’를 분석해 보자. ‘Modernity’의 어원인 라틴어 ‘modernus’(형용사)는 역시 라틴어의 ‘modo’(부사)에서 파생된 단어다. ‘modernus’의 의미는 ‘something that is modern’ (근대적인 어떤 것)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활용된 것은 5세기경 ‘기독교 시대’와 ‘이교의 시대’를 구별하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1620년경 만들어진 근대성 (Modernity)이라는 용어는 용어의 정의로만 볼 때, 르네상스 이후 시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가. 코페르니쿠스[2]


코페르니쿠스는 현재의 폴란드 중북부에 있는 토룬(Toruń) 출신이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그는 50세쯤에 대주교가 되기도 한다.) 27세 때인 1500년 여름 코페르니쿠스는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에서 4년 동안의 법률 공부를 마치고 로마로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에서 코페르니쿠스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폴란드로 돌아온 그는 프라우엔부르크(당시 동프로이센에 속한 도시) 성당 참사회원으로 일했다. 참사회원이란 성당의 미사를 계획하고 건물을 관리하는 직책이므로 그다지 일이 많지 않아 남는 시간에 천문학을 연구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출판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3]는 태양은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그 당시까지 기독교적 세계관(성서적 세계관)에 의해 정설로 믿어오던 지구 중심설, 즉 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태양 중심설, 즉 지동설을 주장하여 근대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전환,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의 전환'[4]을 가져왔다.


[1]

역사학에서는 근대성을 두 시기로 나누는데 보통 16~18세기를 근세(early modern perio)로, 18세기 이후(late modern period)를 근대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 두 시기를 전체적으로 ‘근대’로 부른다. 근대의 성격, 즉 근대성이란 정치적으로 봉건적이거나 전제적인 면을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근대’라는 용어가 매우 긴 시기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근대성’ 역시 상황에 따라 그리고 내용에 따라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2]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




[3]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1권부터 6권까지 총 6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태양중심설 사상은 거의 1권에 서술되어 있다. 1권의 내용은 복잡한 수식을 사용하지 않고 서술문으로 되어있다. 총 14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제1~3장에서는 우주나 여러 천체와 지구가 모두 구형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제4장에서는 천체가 원운동을 한다는 것을 서술하였다. 제5장에서 결정적으로 지구는 자전하면서 동시에 태양 주위를 원운동 한다는 태양중심설을 설명하고 있다. 제6~8장에서는 태양중심설에 대한 지구 중심설 입장의 반론을 들어 이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제9~11장은 태양중심설의 입장에서 어떻게 천계의 여러 현상이 합리적으로 설명되는 가를 설명하고 있다. 제12~14장은 제2권에 대한 수학적 준비로서 원호의 표와 삼각법의 기초 정리를 들고 있다.




[4]

코페르니쿠스의 전환: 코페르니쿠스는 오래전에 확립된 ‘프톨레미(Claudius Ptolemy, 100년~170년. 라틴 식으로 부를 때는 프톨레마이오스로도 불린다.)’의 천동설(天動說)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는 눈보다 과학이 더 정확하다고 믿었으며, 태양을 중심으로 발상을 전환할 경우 ‘눈에는 차지 않더라도’ 과학적으로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 자체가 매우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다. 단순히 어떠한 지식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인식의 틀,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전환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부르고 천문학을 넘어 전체 학문과 사상에서 획기적인 전환에 이 말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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