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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23. 2023

영화 오블리비언(2013)

영화 오블리비언(2013)


일요일, 오래된 이 영화를 보여준다. 예전에 써 놓은 영화평이다. 

영어 Oblivion, '망각', 프랑스어로는 Oublier이며 라틴어 Oblivisci(망각)가 어원이다.


모든 것을 잊는다는 의미이며, 꿈도 꾸지 않는 깊은 잠이나 죽음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주로 사용된다.


얼마 전 개봉된 영화 “호스트”의 우주인 개념은 이전의 우주인의 개념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다. 인간의 몸을 빌려 그 몸의 본래 기억을 통제하고, 우주의 생명체가 그 몸을 사용하는 이야기다. 핵심은 주입된 기억으로 본래 그 몸이 가지고 있던 기억을 통제하는 것인데 과연 이런 방식으로 인간의 기억은 통제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기억을 조작하고 그것을 이식할 수 있는가? 현재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플래시 메모리(USB)처럼 기억을 내려받아 그 기억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이 영화 “오블리비언”의 이야기는 꼭 외계 우주인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다가올 인류 스스로에 대한 보고서일지도 모른다.


미장센


폐허의 지구, 폭파된 펜타곤의 잔해, 사막에 나 뒹구는 자유의 여신상 잔해들, 안테나 탑 일부만 남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처절한 전쟁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핵전쟁이 난 이후의 지구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실제로 핵전쟁이 난 이후의 지구는 어쩌면 영화 속의 장면들보다 더 끔찍한 폐허일지도 모른다.  


공포의 균형(balance of horror)으로 유지되는 한반도의 불안한 균형 속에서 그 균형이 와르르 무너졌을 때 있을지도 모를 끔찍한 전쟁, 어쩌면 핵전쟁으로 확산될지도 모를 그 전쟁의 결과를 영화의 미장센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우리의 주인공 잭 하퍼(톰 크루즈 분)는 불안하게 허공에 서 있으면서 지나치게 개방된 유리 기지에서 반복된 일상 속에 살아간다. 무표정하지만 다정다감한 팀원 빅토리아(안드레아 라이즈보로 분)와 살고 있으며 기묘하게 생긴 비행체를 타고 드론(비행 공격 로봇)을 수리하러 다니는 기술자다. 


이 영화에서 보이는 무대 장치는 하나하나가 모두 은유적 도구로 보인다. 이를테면 허공에 불안하게 서 있는 유리로 만들어져 지나치게 개방된 기지는 현실 상황에 대한 주인공들의 불안과 내밀해야 될 인간의 기억이 누군가에 의해 관찰 혹은 지배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스스로의 기억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성의 상실을 넘어 기계와 같은 존재일 거라는 빅토리아의 무표정과 비인간적 태도, 사회를 통제하는 것은 이념도 제도도 아닌 잔인한 물리력일지도 모를 공격로봇에 의해 통제, 드론이라는 기계를 반복적으로 수리하는 이미 기계화, 부품화 된 인간(언제든 교체 가능한)인 주인공까지 모두 넓은 의미의 미장센으로 여겨진다.


인간, 그리고 기억의 동일성


주인공 잭은 꿈을 꾼다. 꿈은 기억의 다른 공간이며 조작되고 이식된 기억 이전의 선험적 공간인 셈인데 그 꿈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미지의 여인 줄리아(올가 쿠릴렌코 분)를 만난다. 그리고 드론을 수리하러 다니다가 우연하게 발견하는 여러 가지 물건과 장소에서 현재의 자신의 기억과는 다른 또 다른 희미한 기억을 조금씩 떠올린다.


이 영화에서 지구 밖 외계의 존재들은 인간의 몸을 통해 움직이려 하는데 이는 처음 언급했던 “호스트”의 방식과 매우 유사해 보인다. 어쨌거나 실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의 어떤 존재들에 의해 기억을 빼앗긴 주인공의 기억 회복에 대한 동기는 외계의 존재에게 공격당하지 않았던 순수 지구인들에 의해 증폭된다. 순수 지구인(반군) 대장 말콤(모건 프리먼 분)에 의해 급속하게 회복되는 잭 하퍼의 기억은 그를 외계의 존재와 맞서 싸우는 전사로 만드는데 이 과정에 대한 영화적 설명과 복선이 부실하여 처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명과 파괴, 좀 더 나아가 기억과 망각에 대한 다소 철학적인 상징성은 급격하게 떨어지고 간단한 구조의 액션영화로 전락하고 만다. 그나마도 액션의 공간이 특정 장소로 한정되어 관객의 기대를 살짝 저버리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적인 측면에서 지금까지의 SF 영화보다는 매우 진보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약간은 엉성한 느낌이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지나치게 영화 도입부를 장황하게 설명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고, 동시에 주인공을 제외한 각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미흡한 시나리오에도 그 원인이 있어 보인다. 영화가 중반부를 넘기고 잭 하퍼가 기억을 회복하면서부터 관객인 나는 이미 영화의 결론을 예상할 수 있었는데 이러한 영화 서술 방식은 영화 전체의 무게감은 떨어지고 동시에 재미는 반감된다.


영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영화가 기억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표방하고 있는데 정작 기억의 조작에 대한 묘사는 매우 간접적이어서 정확하게 무엇 때문에 기억을 조작하고 이식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여러 명으로 복제되어 영화 마지막 부분에 보는 잭 하퍼는 영화 내내 나온 잭 하퍼가 아니고 더군다나 영화 내내 우리가 본 잭 하퍼는 진짜 잭 하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논리상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복제라는 수단을 통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복제된 사람의 기억은 본래 그 사람의 기억조차 복제되는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문제지만 영화의 제목은 ‘망각’인데 전혀 ‘망각’되는 기억은 아닌 모양이다.  


불안


이 영화의 기초는 불안에 있다. 전쟁에 대한 불안은 표면적인 불안이고 좀 더 깊이 보면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불안과, 어떤 순간에 누군가가 현재의 안정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발견할 수 있다. 그 불안의 대상이 영화에서처럼 외계인이 될 수도 있고 또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의 기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인류가 이룩해 놓은 이 복잡한 문명의 뒤편에 늘 자리 잡고 있는 불안의 그림자는 날이 갈수록 짙어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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