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2024 천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식 Nov 02. 2023

가을, 도를 보다.

秋日見道


一住靜所萬事休*(일주정소만사휴) 고요한 곳에 머물러 만사를 잊으니,

更無煩惱著見焉 (갱무번뇌저견언) 어찌 다시 잡념이 나타날까!

處處以道嚴顯範 (처처이도엄현범) 곳곳에 도로써 높은 경계를 보여주니, 

閑閑隔隔無別旋*(한한격격무별선) 큰 앎이든 작은 앎이든 차별 없이 다가오네.


2023년 11월 2일 아침. 새로 옮긴 학교에서 두 달을 넘기고 있다. 나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인성부 담당 교사로서) 아침 교문 지도를 한다. 8시부터 약 30분간 지도指導라기보다는 아침 인사의 기분으로 아이들과 만난다. 교장으로 지낼 때는 오가는 세상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가, 이제 교사로 돌아와 세상사와는 조금 떨어진 고요함 속에 있으니 번잡했던 그 시절 마음이 조금은 잊히는 느낌이다.


학교 지킴이 선생님은 교문 밖에서 교통지도를 하시는데 우리 학교 위치가 도로망이 불편하여 아침마다 고생을 하신다. 그 지킴이 선생님이 가을이 되어 말라가는 꽃들을 무심히 두지 않고 그 꽃을 모아 연필통에 꽂아 지킴이실 앞에 두셨다. 대단한 마음이다. 나는 그분을 잘 모르고 시든 꽃을 모아 둔 것이 어떤 마음에서 출발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꽃을 보며 곳곳에 있는 도道를 본다.


*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 당나라 시대의 선승) 시에서 차운함. 영가현각은 중국 선 불교의 2대 조사인 혜능과 단 한 번의 대화로 깨달음을 얻은 일숙각一宿覺으로 유명하다.


* 『장자』 ‘제물론’에 이르기를 “大知 閑閑 小知 閒閒 大言 炎炎 小言 詹詹(대지 한한 소지 한한 대언 염염 소언 첨첨)” “대지大知는 너그럽지만 소지小知는 사소하다. 대언大言은 담담하고 소언小言은 수다스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形神之間(형신지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