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日見道
一住靜所萬事休*(일주정소만사휴) 고요한 곳에 머물러 만사를 잊으니,
更無煩惱著見焉 (갱무번뇌저견언) 어찌 다시 잡념이 나타날까!
處處以道嚴顯範 (처처이도엄현범) 곳곳에 도로써 높은 경계를 보여주니,
閑閑隔隔無別旋*(한한격격무별선) 큰 앎이든 작은 앎이든 차별 없이 다가오네.
2023년 11월 2일 아침. 새로 옮긴 학교에서 두 달을 넘기고 있다. 나름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인성부 담당 교사로서) 아침 교문 지도를 한다. 8시부터 약 30분간 지도指導라기보다는 아침 인사의 기분으로 아이들과 만난다. 교장으로 지낼 때는 오가는 세상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가, 이제 교사로 돌아와 세상사와는 조금 떨어진 고요함 속에 있으니 번잡했던 그 시절 마음이 조금은 잊히는 느낌이다.
학교 지킴이 선생님은 교문 밖에서 교통지도를 하시는데 우리 학교 위치가 도로망이 불편하여 아침마다 고생을 하신다. 그 지킴이 선생님이 가을이 되어 말라가는 꽃들을 무심히 두지 않고 그 꽃을 모아 연필통에 꽂아 지킴이실 앞에 두셨다. 대단한 마음이다. 나는 그분을 잘 모르고 시든 꽃을 모아 둔 것이 어떤 마음에서 출발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그 꽃을 보며 곳곳에 있는 도道를 본다.
*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 당나라 시대의 선승) 시에서 차운함. 영가현각은 중국 선 불교의 2대 조사인 혜능과 단 한 번의 대화로 깨달음을 얻은 일숙각一宿覺으로 유명하다.
* 『장자』 ‘제물론’에 이르기를 “大知 閑閑 小知 閒閒 大言 炎炎 小言 詹詹(대지 한한 소지 한한 대언 염염 소언 첨첨)” “대지大知는 너그럽지만 소지小知는 사소하다. 대언大言은 담담하고 소언小言은 수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