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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an 01. 2024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1.     17세기 조선, 명, 왜 삼국의 분기점이 된 노량해전


지금(2023년)으로부터 425년 전, 1598년 음력 11월 19일 새벽, 차디찬 겨울바다에서 6만에 가까운 조선, 명나라, 왜의 수군과 대, 소 1000여 척의 배가 엉켜 싸운 대 해전이 바로 노량해전이다.


조선은 이 전투에서 승리했고 이로써 7년의 임진왜란이 종결되었다. 이 전쟁에 병력을 파견한 명나라는 이후 급격히 국력이 쇠약해져 불과 50여 년 뒤인 1644년 만주족의 후금(청)에 의해 멸망한다.


일본 또한 전쟁을 일으킨 히데요시 사후 1600년 초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도쿠가와 이예야스가 권력을 쟁취하면서 에도 막부의 첫 쇼군이 되었고 그 후 19세기까지 일본은 에도 막부의 시대가 된다.


조선은 선조가 전후 10여 년간 더 통치 후, 광해군으로 이어졌지만 급변하는 명과 후금의 국제 정세 속에서 적절한 외교전략을 펼치던 광해군이 축출되면서 조선은 임진란의 상처가 아물지도 전에 다시 엄청난 전란(병자호란) 속으로 빠져 다시는 회생할 수 없는 국면이 된다.


2.     아! 이순신


일반적으로 이순신을 묘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세계 海戰史에 전무 후무한 기록을 남긴 해군 將帥 이순신과 정치적으로 엄청난 핍박을 받으면서도 끝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관료 이순신이다.

해군 將帥 이순신은 잘 알다시피 무패의 기록을 가진 장수다. 몇 번의 전투에 참여했는지는 다양한 학설이 있으나 전투에서 패했다는 기록은 없다. 이순신이 선조의 눈 밖에 있는 장수임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패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무패의 기록은 조작된 기록은 분명 아니다.


문제는 정치적 핍박을 받은 관료 이순신이다. 영화에서 한 장면 등장하는 선조와 윤두수의 대화에서 보듯이 선조는 당시 이순신에 대하여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윤두수는 당시 서인의 영수領袖로써 동인으로 추정되는 이순신의 업적을 절하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이순신이 동인이었던 류성룡의 천거와 옹호에 힘입은 바 있기 때문에 동인으로 보지만 사실 이순신은 당파적 활동을 한 적이 없는 야전의 군인일 뿐이었는데 그가 워낙 출중한 전과와 함께 백성의 지지를 받는 사실이 선조에게는 은근히 불쾌한 일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북을 치는 시퀀스를 통해 그의 죽음을 그리는 것은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순신이 유탄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여러 기록들을 놓고 본다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는 전투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로써 통상적인 전투 지휘 중에 유탄에 맞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왜냐하면 그의 존재는 전투의 승패와 직결되는데 함부로 유탄에 노출되는 상황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러면 영화처럼 그가 전투상황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었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을 가정하면 그의 죽음에 매우 희미하지만 이순신 개인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영화는 이 느낌을 북치는 장면으로 묘사했을 것이다.)


7년간의 긴 전쟁으로 조선은 정치 경제적으로 피폐해졌으며 민심 또한 바닥으로 추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왕과 권신들은 전쟁 이후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영화에서 이순신이 직접 이 대사를 하게 한 것은 아마도 그의 죽음을 묘사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적인 복선일 수도 있다.


3.     3부작의 끝, 열린 결말


이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재구성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명량’과 ‘한산’을 거쳐 ‘노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작업을 모두 보았다. 얼마 전 개봉한 ‘서울의 봄’ 또한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영화를 보고 난 뒤 관객으로서 나에게 남아 있는 생각인데, 이를테면 민족의 영웅 이순신의 3대 해전의 압승을 통해 우리는 자긍심을 가지는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나의 마음은 오히려 비관적인 생각으로 가득하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인데 관객인 나는 3편의 영화 끝에 오히려 열린 결말을 상상하고 있으니 참으로 역설적이다.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어떤 이유로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인류 최악의 행동이지만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에서 단 한순간도 전쟁 없는 시절은 없었다. 2023년이었던 어제도 2024년인 오늘도 세계 각처에서 명분 없는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고 있다.


4.  사족


왜의 장수 시마즈(시마즈 요시히로)가 등장하는 장면 뒤에 일도할단一刀割斷이라는 큰 글씨가 보인다. 속전속결의 의미가 있다. 왜 그 글씨를 뒤에 놓았는지는 알 수 없다. 시마즈는 칠천량 전투에서 대승했지만 노량해전에 패해 목숨만 건졌다. 그러나 전후, 고니시의 퇴로 확보의 공을 인정받아 영지를 받는다.


영화에서 고니시(고니시 유키나카)는 눈알만 번득거리는 약간 무능해 보이는 왜의 장수로 등장하지만 그는 임진란 초기 선봉장으로 우리 국토를 유린한 천인 공노할 놈이다.


중국 도독 진린은 영화에서 이순신에게 감화되는 듯 보이는데 역사적 근거는 희박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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