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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Feb 18. 2024

'Kerinon ekmageion'의 비유

인식론을 위한 워밍업(14)

'kerinon ekmageion(밀랍 서판, 혹은 새김판)'의 비유


인간의 기억과 그 기억으로부터 유래된 앎에 대한 플라톤식(어쩌면 고대 그리스의 모든 철학자가 동의한) 비유가 바로 ‘밀랍으로 된 새김판’이다. (테아이테토스, 플라톤, 정준영 옮김, 이카넷, 2022. 160쪽)


밀랍은 꿀벌 중 일벌의 배 아래쪽에서 분비하는 노란색 천연 왁스이다. 일벌은 이것으로 벌집을 만들고 거기에 알을 낳는다. 즉 자연상태에서 만들어진 벌집의 주 재료가 밀랍이다. 고대로부터(거의 1만 년 전부터) 인간들은 벌을 사육했으며 거기에서 나오는 밀랍을 이용하여 사람들은 다양한 것들을 만들었다. 


테아이테토스의 ‘밀랍 서판, 혹은 새김판(kerinon ekmageion)’의 비유는 '인상印象(typos)’이 찍히거나 박히는 판을 뜻한다. 하지만 'ekmageion'*이 무엇이 새겨지는 판이 아니라 무엇이 찍히는, 즉 판화처럼 찍어내는 원판의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실제 사용되었던 밀랍 서판은 주로 예리한 물건으로 긁어서 글씨를 쓰는 것이었으니 찍어낸다는 의미보다는 중요한 내용을 저장하는 장치(오늘날의 작은 기록장, 나아가 컴퓨터의 모든 기록 프로그램)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당시 일반적으로 사용된 서판으로는 돌, 나무 등이 사용될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한 번 사용하면 다시는 지울 수가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것이 경화된 밀랍인데, 기존의 것을 지우고 새로 쓸 수 있는 기능을 할 수 있어서 고대 그리스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일반적으로 활용되었다.


[코라공간: 플라톤은, ‘있음’은 ‘없음’이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질서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없음’과 ‘있음’ 사이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제3의 공간이자 시간을 그리스어로 ‘코라χώρα’라고 불렀다. 코라는 무를 유로 만드는 마술상자와 같아서 흔히 여자의 자궁으로 비유했다. 여기서 ‘ekmageion’은 바로 그 코라 공간의 다양한 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새김바탕이라는 의미이다.](플라톤, 박종현․김영균 옮김, 『티마이오스』, 서광사, 2000. 참조)


‘밀랍 서판’의 비유로 볼 때, 플라톤이 생각하는 기억은 단지 기록된 사실에만 한정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시 이 말의 배후에는 기왕旣往의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을 가정한다.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지우고 새로 쓰는 순간 이전의 것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동양의 인식론과 차이를 보인다. 동양 인식론을 대표하는 것은 불교의 중관론과 유식론이다. 중관론과 유식론을 관통하는 중요한 생각 하나는 어떤 경우라도 그 바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바탕은 우리의 감각에 의한 有, 無로 감지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으로서 상황이 조성되는 순간 드러나게 되는 것이니, 앞서 서양의 ‘밀랍 서판’처럼 완전히 삭제되어 아무것도 없는 상황과는 큰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이다.   


흔히 서양철학자들은 동양에는 인식론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양 철학에서 인식론은 서양의 인식론처럼 철학의 분류상 하나의 가지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전체 철학에 통섭統攝되어 있어서 구분이 곤란할 뿐이다. 즉 특별한 부분만이 인식론이라고 분류할 수 없을 만큼 전체 철학에 깊이 녹아들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의 ‘격몽’의 예를 들어보자. ‘격몽擊蒙’은 ‘어리석음을 깨우친다.’는 뜻으로 ‘몽蒙’ 자는 『주역周易』 ‘몽괘蒙卦’에서 유래한 것이다. ‘몽괘蒙卦’의 효사를 풀이해 보면 ‘동몽童蒙’으로부터 ‘발몽發蒙’, ‘포몽包蒙’, ‘곤몽困蒙’, ‘격몽擊蒙’ 등이 있는데 동몽은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는 것이고, (동몽선습童蒙先習) 포몽은 덕을 바탕으로 인화人和와 포용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발몽은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며 곤몽은 피해야 하는 것으로써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격몽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마치 현재의 의무 교육처럼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새로 쓰는 주역강의, 서대원 지음, 뜻있는 도서출판, 2020. 65쪽 참조)  


이와 같은 설명을 통해 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이 지점이 바로 동양의 인식론이 스며든 부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단지 교육이 자연과 인간이 만든 논리나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으로는 권력과 명성을 탐하는 이들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공동체가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유학에 있어서 학문의 목적은 곧 인간의 본래성을 회복하여 성인이 된다고 하는 인격의 완성을 통하여 사회를 바로잡고 문화를 창조하는 외왕外王*이라는 목표(외부적으로 완전한 인격체)를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학에 있어서의 학문이란 관념적인 사변思辨이나 인식론적인 논증이 포함되고 동시에 실천적인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외왕外王이란 내성외왕內聖外王에서 유래한 말로써 내면의 덕을 기준으로 말하면 성인이고, 밖으로 나타나는 신분으로는 제왕인 사람으로 요순을 비롯한 유가의 聖王을 말한다. 『장자』 ‘천하’ ]


근대에 영국 경험론자들이 인간의 마음을 '빈 서판(blank slate)’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대표적으로 로크(존 로크, John Locke, 1632~1704)는 이 사실을 '밀랍(Wax)'을 인용하여 설명한다.(인간오성론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II. 29. §53) 그는 또 ‘외적 감각’과 ‘내적 감각’을 나누고 각각의 것들을 이렇게 설명한다. 즉 그것들만이 '빛이 암실에 깃들 수 있게 해 주는 창문들'(the Windows by which light is let into this dark Room)이라고 주장한다.(같은 책 II. 11. §17) 


즉 로크는 인간의 마음이나 사유를 '암실(dark Room)'에 비유하는데, 이 문제는 훗날 라이프니츠에 의해 비판 받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판의 과정에서 라이프니츠가 사용한 단어가 바로 'tabula rasa'(라틴어, 지워진 서판)였다. (인간오성신론, 프랑스어-『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영어-『New Essays on Human Understanding』, BOOK I, Chapter i) 그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원문에는 ‘필라레테스Philalethes-진리를 사랑하는 자’라는 허명이 서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Are there innate principles in the mind of man?

인간의 마음에는 타고난(선천적인) 원리가 있는가?

that there is vacuum and there are atoms,

진공이 있고 원자가 있다는 것,

that matter could think,

생각할 수 있는 물질은 있으나,

that there are no innate ideas,

타고난 관념은 없다는 것,

that our mind is a tabula rasa = ‘an empty page’, and

(그래서)우리의 마음은 타불라 라사, 즉 빈페이지라는 것, 그리고

that we don’t think all the time."

우리는 항상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무엇을? 빈 페이지라는 것을)


이후 'tabula rasa'는 영국의 경험주의가 가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견해를 대표하는 단어로 굳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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