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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Mar 21. 2024

부조리

Absurdism 부조리(철학적인 해석):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 


The struggle itself toward the heights is enough to fill a man's heart. One must imagine Sisyphus happy.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 신화’ 마지막 문장이다. 해석하자면 ‘산정山頂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시지프(Sisyphus; 시시포스 또는 시지프스의 프랑스 식 발음)의 슬픈 운명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시시포스’는 꾀가 많은 것으로 명성을 떨쳤는데 욕심이 많고 속이기를 좋아했다. 여객과 방랑자를 살해하기도 했다. ‘시시포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 Thanatos’가 그를 데리러 오자 오히려 ‘타나토스’를 잡아 족쇄를 채워 한동안 아무도 죽지 않았다. 전쟁의 신 아레스는 적들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분노했다. 분노한 아레스가 개입하여 결국 타나토스를 풀어주었고, 죽음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여 ‘시시포스’는 타나토스에게 인계되었다.


이 상황에서도 ‘시시포스’는 꾀를 내어 아내에게 시시포스는 죽기 전에 아내에게 자신의 벌거벗은 시체를 광장 한가운데에 던지라고 했고 저승에서 아내의 무례를 핑계 삼아 하데스의 부인 페르세포네에게 다시 이승으로 다시 보내줄 것을 간청했다. 그리하여 다시 이승으로 간 ‘시시포스’는 저승에 돌아오기를 거부해, 나중에 ‘헤르메스’가 강제로 다시 저승에 인계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하데스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처벌로 시시포스에게 거대한 바위를 타르타로스의 가파른 언덕 위로 끝없이 굴리게 했다. 정상에 올리면 돌은 다시 밑으로 굴러 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돌을 밀어 올리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하데스는 시시포스를 영원히 쓸데없는 노력, 그리고 끝없는 좌절에 빠뜨리게 되었다. 무의미하거나 끝이 없는 활동을 때때로 "시지프(Sisyphean)"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신화를 다른 각도로 해석한 까뮈, 그 이유를 그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그를 떠받쳐준다면 무엇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워하겠는가? 오늘날의 노동자는 매일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데, 그의 운명도 못지않게 부조리하다. 그러나 그것이 비극적이 되는 것은 의식화되는 드문 순간이다. 무력하고도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아마도 그에게 고뇌를 안겨주는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없다.”(Camus: The Myth of Sisyphus, 23쪽)


하여 이런 생각에 이른다. 


내가 무엇인가를 인식한다는 것은 그 이면의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시작점이며 동시에 내가 다가갈 수 있는 사실의 이면으로 향하는 첫 번째 문이 될 것이다. 언제나처럼 밤이 오고 또 잠을 청하며 아침을 맞이하는 이 순환이 시시포스의 돌덩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의식해야 하는가 혹은 무의식으로 지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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