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하이데거에게 있어 모든 사태(事態, die Situation)는 대단히 정교하고 치밀하며 충분히 구조화된 것이다. 그에게 보이는 모든 현상은 반드시, 그리고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했는데 우리가 흔히 나누는 잡담(Das Gerede)도 예외는 아니다.
하이데거는 그의 책 『존재와 시간』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제1편 현 존재를 위한 예비적 기초분석(Die Exposition der Aufgabe einer vorbereitenden Analyse des Daseins)
제5장 내-존재 그 자체, 혹은 안에-있음 그 자체(Das In-Sein als solches)를
A. Die existenziale Konstitution des Da(‘거기에’의 실존론적 구성)에서
§ 29. Das Da-sein als Befindlichkeit(정황성-‘처해 있음’으로서의 거기에 있음),
§ 30. Die Furcht als ein Modus der Befindlichkeit(처해 있음의 종류로서의 공포),
§ 31. Das Da-sein als Verstehen(이해로서의 거기에 있음),
§ 32. Verstehen und Auslegung(이해와 해석),
§ 33. Die Aussage als abkünftiger Modus der Auslegung(미래 해석 방식으로서의 진술),
§ 34. Da-sein und Rede. Die Sprache(거기에 있음과 언어, 그리고 말)에 대해 설명 한 뒤
B. Das alltägliche Sein des Da und das Verfallen des Daseins(‘거기에’의 일상적 존재와 현 존재의 빠져듬)에서 아래의 네 항목을 설명한다. 즉,
§ 35. Das Gerede(잡담),
§ 36. Die Neugier(호기심),
§ 37. Die Zweideutigkeit(애매함),
§ 38. Das Verfallen und die Geworfenheit(빠져있음과 피투-내 던져짐)이 그것이다.
여기에 있는 § 35. Das Gerede(잡담)에 대한 하이데거의 이야기를 보자.(SEIN UND ZEIT VON MARTIN HEIDEGGER, Elfte, unveränderte Auflage 1967, 167~170쪽. 한글판 Sein und Zeit, 이기상 역 230쪽~234쪽 요약정리)
먼저 하이데거는 잡담을 일단 이렇게 규정한다. “일상적 현 존재의 해석과 이해의 존재양식을 구성하고 있는 긍정적 현상”
잡담을 통해서 현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함께 잡담이 거의 필연적으로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먼저 밝히고 있다. 그다음 과정으로 말과 언어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말은 언어로 표현되는 순간, 즉 밖으로 말해질 때는 이미 그 내부에는 이해와 해석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해는 현 존재에 대한 이해이며 해석 역시 현 존재에 대한 해석을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밖으로 말해진 그 자체는 현 존재가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말은 현 존재의 본질적인 존재 구성 틀에 속하고 동시에 현 존재는 열어 밝혀져(세계를 향하여) 있다는 것이다.
밖으로 말해진다는 것은 함께 나눔을 전제로 한다. 역시 밖으로 말해진다는 것은 세계에 대한 이해인데 세계에 대한 이해란 타인, 즉 공동 현 존재(자기 자신을 포함한)의 참가를 겨냥하는 것으로서 이들의 관계는 지극히 동일한 평균 성을 가진다고 하이데거는 생각하였다.
하이데거는 말로 표현된 존재, 또는 말로 표현된 사태, 즉 언표言表들은 진실함과 사태적합성을 가지고 있으며 잡담은 누군가 먼저 퍼뜨려 말하고 그것을 뒤따라 말하는 방식이라고 보았다. 즉 하이데거는 잡담의 속성을 일종의 ‘베껴 씀’ 정도로 이해한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잡담을 무지반성(근거 없음)으로 판단한다. 즉 잡담은 사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도(경험이나 냉철한 자기 분석과 비판 없이) 모든 것을 이해할 가능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잡담은 공공성 안에서만 존재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마침내 하이데거는 이렇게 정리한다. 잡담은 세계 안에 존재자인 자신을 은폐하거나 닫아버릴 수 있는 위험성도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달리 표현하면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로 열어 밝힌 현 존재의 가능성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현 존재의 이해 방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