諧調(해조) 어울리다.
染紅唯數葉 (염홍유수엽) 몇 잎만 붉게 물드니,
不調或和潔 (부조혹화결) 어울리거나 어울리지 않거나
有差仍妙光 (유차잉묘광) 차이 있어 오히려 빛나니,
無別非分別*(무별비분별) 분별이 아니라 분별없음이라.
2024년 11월 6일 아침. 갑자기 겨울에 당도하다. 지난 주말 산행 때 사진을 촬영하면서 글을 생각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수요일 아침에서야 비로소 머릿속에 있던 글을 옮겨 놓는다. 사물의 어울림은 우리 관점의 소산이다. 고전적 어울림은 조화와 균형에 그 핵심이 있다. 하지만 조화와 균형 속에 내재된 ‘억압’이나 ‘강제’를 생각해 보면 고전적 조화와 균형은 폐기되어야 할 가치 일지도 모른다.
아직 녹색인 숲 속, 한 줄기 햇살 덕에 단풍 몇 잎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인공적이었다면 아마도 매우 어색했겠지만 자연은 그 어떤 상황이나 조건도 있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도덕경 7장의 天長地久의 거대한 철학과 연결된다. 이를테면 하늘과 땅은 서로 그 어떤 간섭도 없다. 하지만 서로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 어떤 구체적인 목표의식도 없지만 거대한 목표 속에서 자유롭다. 자유롭기 때문에 서로 소모되지 않고 동시에 멈추지 않으며 마침내 ‘서로 존재함’, 그 자체로 충분해진다.
* 팔대산인(八大山人, 1624~1703)은 중국 명나라 왕족 출신으로 명 청 교체기의 승려이자 화가이다. 본명은 '주탑'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호방하고 거대했으며 동시에 득도의 절묘한 경지를 보여준다. 그의 화제시 일부를 차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