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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이 폈으니 장마다.

by 김준식


이 꽃이 폈으니 장마다.


어릴 적 동네 어른들은 이 나무를 ‘소찰밥(소쌀밥이라는 이야기도 있음)’이라 불렀다. 여름철이면 각자 자기 소를 몰고 풀이 많은 곳에 가서 소를 고정시켜 놓으면 주변에 있는 이 나뭇잎을 소들이 잘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나무의 정식 이름은 ‘자귀나무’다. 이름에 있는 ‘자귀’는 목공용 도구다. 한쪽은 망치처럼, 다른 한 쪽은 칼날이 달렸지만 도끼와 달리 날의 방향이 직각으로 돌려져 있어 주로 나무를 깎아내는 데 사용한다. 그 자귀의 손잡이를 만드는 용도로 이 나무를 사용했다는 이야기인데 자귀나무가 그런 용도로 쓰인 것은 나무의 결이 곧고 수직 방향으로 잘 형성되어 목재가 마른 후에는 매우 단단해지기 때문이다.(하지만 목재가 크지 않아 도끼나 괭이자루로는 사용하기 어려웠다.)


또 이 나무 잎은 매우 작지만 모든 잎자루에 나 있는 잎은 정확히 짝수다. 밤이 되면 모든 잎이 닫히는데 홀로 남는 잎이 없다. 즉 모든 잎의 숫자가 짝이 딱 들어맞는다. 그래서 부부 금슬을 상징하는 합환목合歡木, 합혼수合婚樹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웃 일본에서는 잠자는 나무라는 의미로 ‘네무노키(nemunoki)’라 부른다. 잎의 모양은 미모사와도 닮았다. 미모사도 같은 집안이다.


결정적으로 그 꽃이 참 예쁘다. 붉은색 중에서도 (RGB로 파악해 보자면) 파랑이 녹색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붉은빛이다. 이 나무는 전 세계에 걸쳐 자생하는데 개인적으로 이집트 여행 때 가로수로 심긴 이 나무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에 열매를 맺기는 하는데 그 깍지가 내 손가락 정도이거나 작은데(참고로 이 나무는 콩과 식물이다. 그래서 깍지를 만든다. cf. Family: Fabaceae) 이집트에서 내가 본 이 나무 깍지는 내 손바닥보다 훨씬 컸다. 겨울이 없는 사막 기후에서도 이 나무는 잘 자란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이 나무를 귀신나무라 부른다. 장마 오는 시기를 귀신처럼 잘 맞춘다는 이야기인데… 올해는 비슷하기도 한 듯 아닌 듯 그렇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마다 조금씩 오차가 생긴다. 하지만 대체로 그 시기에 이 꽃은 핀다.


덧, 18세기 중반 이탈리아 귀족이자 박물학자 또는 식물학자인 Filippo degli Albizzi 에 의해 유럽에 소개되었는데 이 나무의 전체 속(cf. Genus: Albizia)명은 그의 이름을 따서 Albizzia가 붙는다. 이집트의 나무 역시 그 이후에 전해 진 것이라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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