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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22. 2016

Le pauvre pêcheur, 1881.

마음을 비우고(心齋)

Le pauvre pêcheur, 1881. Oil on canvas, 155.5cmⅹ192.5cm

엄숙함과 쓸쓸함 사이에서, 

Pierre Puvis de Chavannes(피에르 퓌비 드 샤반)의

Le pauvre pêcheur(가난한 어부) 1881


표현주의(야수파)의 대가 Heinri Émile-Benoit Matisse(앙리 마티스)가 높이 평가한 덕에 매우 유명해진 Pierre Puvis de Chavannes(피비 드 샤반, 1824~1898)은 캔버스에 그리는 화가보다는 벽화 작가로 더 유명하다. 물론 그가 그린 캔버스 작품들은 뒤이어 만개한 후기 인상파들이 작품의 모티브로 삼을 만큼 뛰어난 그림이 많다. 이 그림도 바로 그중 하나이다.


가난한 어부(Le pauvre pêcheur)로 알려진 이 그림이 1881년에 처음 살롱을 통하여 공개되었을 때, 이 작품은 심한 비판을 받았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이고 비현실적 주제를 다루고 있었고 동시에 형식적으로도 이 그림은  당시 프랑스 아카데미적 회화 관습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어부가 배 위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다. 어부의 행색으로 보아 최근에 고기를 잡아 돈을 만든 적이 없는 듯, 초췌하고 남루해 보인다. 그의 아내와 아이는 꽃이 핀 풀밭에 있는데 아내는 꽃을 꺾어 한 다발을 쥐고 있고 아이는 그 꽃 밭에 누워있다. 이 무표정해 보이는 가족들이 오히려 어부의 표정과 함께 더 쓸쓸해 보인다. (혹자는 두 아들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그러기에는 나이차가 너무 많아 보인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아무려면 어떠리 ) 이 그림은 샤반 이전의 화가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채도와 명도가 낮은 약간은 무거운 색을 주조로 했는데 이는 그가 벽화를 주로 그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피에르 퓌비 드 샤반은 프랑스의 리옹 출신으로 광산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공과 계통의 삶을 살려했으나 병 요양 때문에 들른 이탈리아 여행이 그를 화가의 삶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그는 아주 짧게 Eugène Delacroix(외젠 들라크루아) 화실에서 배우기도 하고 역사화가였던 Thomas Couture(토마 쿠튀르)에게도 사사하였다. 하지만 샤반의 그림은 이들 화가의 영향보다는 매우 독자적이며 창의적인 세계로 나아갔는데 이 그림이 바로 샤반의 독자성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화면의 위쪽에 수평선을 그려놓았는데 이것은 그림을 보는 우리에게 마치 전지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장치로 이해된다. 화면 앞에 우뚝 선 어부의 실루엣은 전체적으로 전통적 원근법과는 약간 무관해 보인다. 또, 풍경을 굽어볼 수 있게 함으로써 그림의 주인공인 어부의 피곤하고 힘든 삶과 거기에 부가되어 있는 어부 가족들의 삶이 우리에게 곧바로 통찰되게 한다. 이 모두는 샤반이 계획한 의도된 장치로써 그림의 무거운 채색과 수면에 반사된 쓸쓸한 배 그림자, 화려하지 않은 들꽃 등을 통해 우리의 가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희미하고 동시에 쉽게 특정할 수 없는 회한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그림의 느낌은 샤반 이후의 후기 인상파, 특히 GeorgesPierre Seurat(조르주 쇠라), Paul Gauguin(폴 고갱), Maurice Denis(모리스 드니)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는데, 그들은 샤반이 묘사한 이 엄숙한 장면이 자신들의 가슴속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피카소도 이 작품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장자 이야기


마음을 비우고,


심재(心齋)는 텅 비게 하는 것이다. 물이 고여 있으면 썩듯이 마음에도 감정들이 담아진 채로 있으면 다투고 해치게 된다. 


비어있으면 무엇이든 부딪힘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방이 빛으로 가득 찰 수 있고, 마음도 비워내면 고요해지고 행복(吉祥)도 머물 곳이 생긴다.(虛室生白,吉祥止止<인간세>) 


가을 잎을 부여잡고서는 겨울을 날 수 없는 나무처럼, 미련 없이 잎을 떨구는 것은 자연에 순응함이다. 천지자연이 아무것도 따져 묻지 않고 그러하듯이 마음도 이처럼 비워내는 것이 자연에 순응함이다. 


순응하지 못하면 제 자신(我)에게만 얽매이게 되니, 몸은 앉아있어도 마음이 미친 듯이 달린다. <좌치(坐馳) – 장자 인간세> 따라서 심재함으로 자신에게 구애되지 말라한다. 


자신에게 구애되면 잠잘 때 마음은 꿈을 꿔서 산란하고, 깨어나면 마음은 사물과 접촉하여 날마다 전쟁을 치른다. 


어떤 때는 넓게 마음을 쓰고, 어떤 때는 깊게 마음을 쓰고, 어떤 때는 꼼꼼히 마음을 쓴다. 작은 두려움에 기가 죽고 큰 두려움에 넋을 잃기도 한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염려, 후회, 변덕, 고집, 아첨, 방자, 내세움, 꾸며댐, 이것 모두 밤낮으로 눈 앞에 번갈아 펼쳐지지만 딱히 그것이 생기는 원인을 알 수 없다. 반드시 그 이유를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알려고 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다시 생겨난다. 


감정이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감정도 생겨나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에 가깝지만 이것만으로는 감정의 변화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참된 주재자(진재:眞宰)가 있는 듯 하나 그 조짐을 알 수 없고, 그것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데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즉 우리 마음에 담긴 감정이 원래 거기에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로워지려면 그 감정에서부터 떨어져 나와야 한다. 이런저런 판단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단지 그냥 내 보내 모든 것을 비우는 것이다.


‘인간세’에는 우리가 책에서 읽었던 실존하는 인물들도 있고 장자가 寓意(가공으로)로만든 인물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공자와 안회가 있다.(논어의 주인공 ‘공자’와 ‘안회’는 분명코 아니다) 안회는 공자에게서 들은 대로 “어지러운 나라로 나가기” 위해 폭정을 일삼고 있는 위나라의 임금을 깨우쳐 섬기기 위해 가겠다고 했다. 공자는 안회를 말리는데 그 까닭은 이러하다.


“위나라의 군주는 사나움이 마음속에 가득하고 그것이 바깥으로 심하게 드러나서 정신과 안색이 일정치 않고 사람들이 규율을 어기지 않는 것을(두려워서) 즐기며,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억누르고 군주의 마음대로 모든 것을 추구한다. 이런 사람을 일러 작은 덕 조차도 이루지 못할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하물며 큰 덕을 이루겠는가! 그러니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런 포악한 군주를 섬기러 갔다가는 죽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안회에게도 다음과 같은 방법은 있다면서, “안으로는 하늘과 한 무리임을 믿는 강직함을 품고, 밖으로는 신하 된 예법을 따르는 세상 사람들과 맞추어 행동으로 따르며, 의견을 내세울 때는 옛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일 뿐”이니 이 정도면 해 볼만 하지 않겠냐고 공자에게 되묻는다. 


공자는 그 정도로는 죄를 짓지는 않지만 상대(위나라 왕)를 감화시키지 못한다고 딱 자른다. 어찌할 바 몰라하는 안회에게 공자는 “마음을 비우는 것이 마음을 재계(齋戒)하는 것이다.”라는 방도를 가르쳐준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비우는 심재인데 심재는 “귀나 눈을 안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의 작용을 밖으로 향하게”하는 것(즉안과 밖을 통하게 하는 것)인데 이렇게 했을 때 만물을 감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장자라는 책 속에서 안회는 위나라로 떠나지 못했다.


장자 인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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