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

전쟁과 불안에 대한 고찰

by 김준식
불안한 토미의 눈

1. 역사적 사실의 영화화에 따른 위험, 그리고 실체적 진실


역사적인 사실을 영화화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시간을 거슬러 그 당시의 환경과 상황을 관객에게 설명해야 하고, 그 바탕 위에 영화적 서사를 다시 구축하는 작업은 자칫 영화도 아니고 다큐멘터리도 아닌 어중간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십상이다. 대체로 역사적인 사실로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건들도 시간의 경과와 함께 윤색되고 왜곡되어 실체적 진실은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영화적 작업은 이러한 것을 더욱 가중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극단적인 상황, 이를테면 전쟁이나 자연적인 대재앙과 같은 사실들(전쟁이라는 전체적인 사건이나 자연재해의 규모 등)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실체적 진실보다는 그러한 사건들의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들이 더 부각되거나 심지어 각색되어 우리에게 전해진다. 전쟁이라는 매우 극명한 대립관계에서 빚어지는 이야기는 아무리 객관이라는 기준으로 사실을 파악하려 해도 그것을 매우 객관적이라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어차피 피아의 구분이 확연한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 전쟁인데, 거기에 객관과 주관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벌써 실체적 진실의 왜곡일 수 있는 것이다.


2. ‘덩케르크’ 철수 작전


2차 대전 개전 초에 해당하는 1940년 5월, 육군 중장 구데리안(Heinz Wilhelm Guderian, 1888~1954)과 만슈타인(Fritz Erich von Lipinski Manstein, 1887~1973)이 이끄는 독일군의 기갑사단은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지대의 프랑스 방어선을 돌파하고 그대로 영국 해협을 향해 서쪽으로 밀고 나갔다. 독일의 기갑부대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는데 만약 히틀러가 의문에 쌓인 공격 중지 명령(5월 26일 철회)을 내리지 않았다면 2차 대전의 결과는 지금과는 상당 부분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은 독일군의 공세에 밀려 두 부분으로 갈라졌고, 심지어 영국군은 도버 해협이 바로 앞에 있는 ‘덩케르크’까지 밀려 거의 퇴로를 차단당한 채, 해안에 고립되고 말았다.


이때 당시 영국군 사령관이었던 육군 원수 고트 경(John Vereker, 6th Viscount Gort, 1886~1946)은 이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후퇴, 즉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철수하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이른바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었다.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영국 어촌의 작은 어선, 요트, 즉 민간인 배가 도버를 건너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서 약 338000명의 연합군을 영국으로 철수시킨 이 작전은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2차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가 된다.


3. 영화‘덩케르크’


앞서 말한 것처럼 객관적 사실인 ‘덩케르크 철수 작전’ 내부에 존재하는 여러 장면을 지극히 영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영화 ‘덩케르크’이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영국 출신이라는 것이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에서 독일인은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다. 영국인들의 관점에서 영국인들의 이야기를 영국식으로 늘어놓은 이 영화는 이미 ‘덩케르크’라는 지명 외에는 객관적 사실이나 실체적 진실과 상당 부분 거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시리즈 영화의 지루함을 넘다.


최근 극장가에 등장하는 수입영화들 중 큰 관심을 끄는 영화 대부분은 시리즈 물이다. 시리즈 영화의 가장 큰 폐해는 각 영화가 시리즈 전체의 서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 개봉하기 전에 그 영화의 일정 부분을 이미 알고 있어 영화적 신선도가 상당 부분 떨어진다는데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적 서사를 맞추기 위해서 다음 시리즈 영화의 준비 작업에 해당하는 영화도 있고, 또 전혀 엉뚱한 스토리를 삽입하여 전체적 서사를 엉망으로 만들어 영화를 본 관객들이 매우 황당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영화도 있다. 이 영화 ‘덩케르크’는 최소한 이런 부분에서 영화적 긴장감이나 서사의 설득력, 영화적 인물 묘사에 있어 관객에게 충분히 긴장감과 기대감을 줄 수는 있다. 왜냐하면 이미 종결된 사실을 시리즈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2) 타임라인의 절묘한 편집에서 오는 단순성의 극복


사실을 기초로 한 영화이기 때문에 시리즈 영화보다 더 참신함이 떨어질 수 있고, 동시에 진부한 국가주의 영화로 치부될 수 있는 이 영화를 감독은 편집기술을 이용하여 이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타임라인을 편집기술을 이용하여 상당부분 중첩적인 서사구조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마치 여러 개의 사건들이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출발하여 서로 연결고리를 가지는 것처럼 만들었는데 다분히 직선적이고 필연적인 역사적 사실이 가지는 단선적 타임라인의 지루함을 가볍게 넘어 일반 픽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암시와 갈등, 그리고 긴장감과 극적 연결구조를 관객에게 느끼게 한다.


영화로 제작할 만큼 극적인 사태라고 볼 수 없는 것이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다. 이를테면 작은 아군 병력으로 막강한 적군의 공격을 막아낸 사건도 아니고, 또 소수의 정예병사가 적진의 심장부를 타격하여 전쟁의 방향을 바꾸는 이야기도 아닌 그저 패퇴하는, 그리고 알 수 없는 공격의 불안에 시달리는 힘 빠진 군인들이 가득한 장면을 영화로 제작하기로 한 ‘놀란’ 감독에게는 편집이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던 것이다.

도슨의 요트

3) 영웅주의로부터 벗어난 전쟁영화


‘놀란’ 감독의 필모그래피로 보았을 때 이 영화는, 그의 이전 영화와 그 궤적을 같이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가 이 영화를 오락영화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오락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 오히려 영화 내내 관객의 불안을 조장하고 부추켜 영화를 보는 것이 감정적인 소비가 너무 심하여 영화가 끝나고 극장 밖을 나섰을 때 몹시 피곤함마저 들 정도였다. 영화 음악의 대가인 ‘한스 짐머’가 만든 불안한 음향이 영화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을 괴롭힌다. 뿐만 아니라 총소리와 폭발음, 그리고 비행기가 내는 굉음들이 이따금씩 관객들을 불편하게 한다.


영화 처음부터 등장하는 영국 병사 토미(핀 화이트헤드 분)의 눈은 불안과 공포, 그리고 생존에 대한 의지로 가득하지만 영화 내부에서 이렇다 할 역할이나 희생, 또는 별스런 용기도 없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보통 사람으로 그려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병사들(킬리언 머피가 분한 떨고 있는 병사를 비롯한 여러 명의 병사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인간의 악마 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그래도 영웅에 유사한 존재들이 없지는 않다. 작은 요트의 선장 도슨(마크 라이런스 분)과 그의 아들 피터(톰 글린 카니 분), 끝까지 비행기 조종사로서 임무를 다한 파리어(톰 하디 분)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도 다른 영웅주의 영화의 영웅들과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 이 부분을 감독은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4) 전쟁, 불안, 인간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위에서 역사이래 단 한 번도 전쟁이 멈춘 적은 없다. 심지어 우리는 수천만이 목숨을 잃은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겪었고 심지어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은 여전히 휴전 상황에서 살고 있다. 전쟁에서 죽음은 필연적인 사태이다. 죽음을 앞둔 인간들이 가지는 감정은 불안이다. 때로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인간의 불안은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을 만들곤 한다.(영화 속에서도 이런 불안이 만든 허상인 ‘인종주의’가 잠깐 스치기도 한다.)


여기에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가치’나 ‘이념’이 개입되면 그 불안에서 비롯된 허상은 실체보다 더 막강한 위력을 나타낸다. 이 막강한 힘은 삶 전체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키고, 동시에 그 증세들을 집단화하여 상상하기 어려운 위력으로 우리를 지배한다. 인간이라는 종이 가진 비극적인 성향 중의 하나인 이것은 현재 한반도와 기타 세계 여러 곳에서 매우 유효하고 동시에 실재하고 있다.


영화 내내 나는 이런 생각들로 복잡했다.


사족 : 조지(배리 케오간 분)의 죽음은 몹시 찜찜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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