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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an 03. 2018

Metaphor of the relationship

2012년 개봉된 이 영화를 오늘 다시 돌아보다. 


관계의 은유


타인과의 관계를 좁게 해석하면 나의 공간과 겹쳐있는 교집합 정도로 이해되지만 넓게 해석하면 나의 공간과 타인의 공간은 둘이 아니라 결국 하나의 집합이며 나라는 존재 인식은 결국 타자와의 경계를 긋는 것이요, 이것으로부터 공간에의 독점 욕구가 생기게 된다. 영화 속 작은 보트 위의 공간을 벵골 호랑이와 주인공 파이의 공간으로 구분 지우기 위해 영화 속 주인공보다 관객인 내가 몹시 바라고 있었음을 영화가 중반부를 넘길 때쯤 알게 되었는데, 이것은 내 머릿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공간에의 독점욕이 작용한 결과였다. 

리처드 파커


벵골 호랑이의 본래 이름은 “목마름”이었다. 하지만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으로 바뀌는데 이 과정에 대한 설명은 아주 짧은 설명이지만 그 속에는 인도인들이 가진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가 모두 녹아들어 있다. 이를테면 이름이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을 숙명처럼 여기거나 또는 지극히 미세한 변화조차도 삶에 있어 하나의 과정처럼 여기는 인도인들의 태도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어쨌거나 리처드 파커는 바다 위에서 만난 폭풍우 속에서도 죽지 않고 구명보트를 타게 되고 주인공 파이와 긴 여정을 시작한다.


고양잇과 동물 중 가장 크고 사나운 호랑이가 인간과 좁은 보트를 타고 끝없는 바다 위를 표류한다는 가정은 사실이든 상상이든 모두 흥미롭다. 바다 위의 보트는 생명을 유지하는 피난처요 유일한 쉼터인데 그 보트 위에 호랑이의 존재는 그곳을 가장 위험한 장소로 만들고 만다. 마치 생존의 처절한 투쟁이 있는 세상처럼 보트 위의 나날은 긴장의 연속이다. 리처드 파커의 영화적 의미는 주인공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시작하여 마침내 드 넓은 대양 위에 존재하는 유일한 동료로 발전하고 마침내 교감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동물인 관계로 끝내 과거의 상황을 뒤돌아보지 않는 “비인간적 존재”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영화의 원작에 스며있는 사물에 대한 서양적 사고의 단면, 예를 들어 인간과 동물의 명확한 구분을 보게 된다. 


장치들


“삶이란 그런 거죠. 무엇인가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것.” 파이의 대사 중 일부분이다. 아마 이 소설과 영화의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생각을 파이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 돌아온 세상에서 파이가 느낀 것은 바로 이 말처럼 그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과거의 사실에 묶이지 말고 현재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 


환상의 섬, 즉 파이 일행이 표류 중 도착한 생명의 섬이자 동시에 죽음의 섬의 존재는 언제나 우리가 겪어내고 있는 우리의 일상과 같다. 어떤 때는 환상의 섬처럼 우리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가도 어떤 때는 우리를 죽음처럼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몰아넣는 일상의 이중성에 대한 상징이 파이가 도착했던 그 섬인지도 모른다.


영화 끝 부분, 파이는 배의 침몰과 표류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믿지 않자 이야기를 꾸며 내는데, 배가 침몰할 당시 구명보트에 탔던 동물들과 배 안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치환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이에나는 배의 주방장으로, 어머니는 오랑우탄으로, 얼룩말은 불교신자였던 선원으로, 호랑이는 자신으로 바꿔 이야기한다. 이것은 영화 스스로 은유와 상징의 의미를 관객에게 다시 물음으로써 영화 내부의 사건들과 더불어 현실에서의 나와 타자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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