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작 매화초옥도와 매화서옥도
매화가 피어 날 이 즈음이면 늘 생각나는 그림이다. 전기의 梅花草屋圖(매화초옥도)와 梅花書屋圖(매화서옥도) 두 그림이다. 두 그림은 서로 보완적이어서 각각의 그림이 상황을 설명하고 두 번째 그림의 시가 전체적인 상황을 요약하고 있다. (구체적 관련성이 있는지는 논외로 한다.)
매화는 봄 꽃 중 가장 먼저 피는 꽃들 중 하나이다. 겨우내 추위를 이겨 내고 피어나는 작고 희며 여린 꽃은 향기도 좋다. 따라서 여러 가지 상황으로 비유된다. 인내와 고결함이 핵심인데, 나는 거의 동의하지 않지만 매화는 주로 중국의 고결한 인물들과 조선조의 선비들에 비유된다.
이 그림을 그린 전기(田琦, 1825~1854)는 1825년(순조(純祖) 25년) 개성 전씨(開城田氏) 가문에서 태어나 30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다. 전기는 추사가 아끼던 제자였다. 그림과 글씨, 시가 뛰어났다. 천재는 요절한다는 말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모양이다. 비교적 건강하게 50대 후반으로 향하는 나는 천재는 고사하고 둔재 중에 둔재 인지도 모른다.
두 번째 그림, 매화서옥도의 題畵詩이다.
雪意園林梅己花 (설의원림매기화) 원림에 눈은 내렸으나 이미 매화는 피었고,
西風吹起鴈行斜 (서풍취기안행사) 서풍 따라 기러기가 비스듬히 날아가네.
溪山寂寂無人跡 (계산적적무인적) 계곡과 산에는 사람은 자취도 없는데,
好問林逋處士家 (호문림포처사가) (나만 홀로) 임포 처사의 집을 즐거이 묻노니.
여기서 원림은 집안에 딸린 작은 정원인데 중국인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즉 그들에게 있어 원림은 관념적이며 동시에 이상적인 정원으로 인식되고 받아들여진다. 우리나라에도 (조선조의 事大로 볼 때, 당연히 그러하겠지만) 이러한 영향을 받아 원림이라는 이름을 쓰는 곳이 간혹 있다. 전남 담양의 명옥헌 원림이 유명하다.
임포는 중국 북송(北宋)의 시인이다. 매화 시인으로 불릴 정도로 매화를 노래한 작품에 걸작이 많이 있다. 하여 조선시대 화가들은 매화를 그리면서 언제나 임포를 떠 올렸다. 참 사대적인 정서이며 동시에 문화 속국적인 감성이지만 내가 탓할 일은 아니다. 어쨌거나 임포는 숲 속 작은 집에 있고 천지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는데 매화는 불을 밝힌 것처럼 환하게 피어있다.
처음 그림은 붉은 옷을 입은 그림 속의 화자인 나는(전기), 임포의 집을 물어서 가고 있는데 정작 임포는 창을 열고 매화를 바라보고 있다. 고람(古藍)은 전기의 호다. 화면 오른쪽 아래에 적힌 ‘亦梅仁兄草屋笛中(역매인형초옥적중)’이라는 글귀로 보아 초옥의 주인인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1879)과 그를 찾아가는 전기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서 오경석을 임포로 짐짓 비유한 듯 보인다. 정말 ‘그림’ 같은 그림이며 ‘그림’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하리. 눈은 내렸고 거기에 매화는 가득 핀 밤에 벗이 있어 찾아가는 풍경을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했으니 논리나 이념, 그 아무것도 가치가 없다. 다만 그림에 보이는 데로 모든 것은 충분하다.
두 번째 그림에는 화제시가 적혀있다. 사실 두 그림은 상관관계가 있는지 혹은 없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밝혀진 바 없지만 다만 내가 보기에 두 그림의 상황이 유사하게 보일 뿐이다. 처음 그림의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두 번째 그림은 1849년(기유년) 그림이다. 그것도 여름에 그렸다.
미점법으로 그린 매화가 마치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 때 눈처럼 묘사되어 있는 것이 매우 특이하다. 이미 눈이 온 풍경 위에 다시 매화를 그렸으므로 매화를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전기가 그린 溪山苞茂圖(계산포무도)의 황량함은 어디에도 없는 이 그림에서 단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달이 없다는 것이다. 눈 내린 밤이어서 그럴까? 밝고 환한 달, 이왕 그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