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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l 05. 2018

불편한 이야기

기말고사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오늘이 둘째 날이다. 어제는 각 부별로 점심식사가 있었고 오늘은 각 과별로 점심을 먹었다. 어제처럼 학년 부 식사는 같은 공간(학년 실)에 있기 때문에 시험 이후에 점심을 같이 하는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과별 점심식사는 같은 학교 공간에 있어도 자주 만날 기회도 없고, 또 교육적 혹은 사적인 대화의 기회가 거의 없는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사회를 가르친다.) 선생님들이 교류할 수 있는 기회이다.

 

오늘 과별 모임은 한적한 외곽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이야기가 나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야기는 크게 학생지도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고 각 교사들 나름대로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학생지도의 어려움과 문제 학생에 대한 처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사회과 교사들의 연배는 50대와 40대가 주류를 이룬다. 나는 그중에 나이가 두 번째로 많다. 50대 초반의 남자 선생으로부터 비롯된 학생 지도의 방향은 7~80년대로의 회귀였다. 이를테면 무지막지한 교실 폭력이 존재하고 군대식 압박이 가해지던 시절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 선생님의 주장이었다. 내심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학생 인권조례가 제정되고 그 어느 때 보다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는 이 시대에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는 그 선생님의 생각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자 또 다른 50대 초반의 남선생님과 50대 중반의 여선생님께서 이러한 의견에 격하게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고, 좌중에 그 누구도 이 이야기에 반박할 의사는 없어 보였다. 물론 나 역시도 너무나 결연한 그 선생님의 태도와 발언에 반대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오늘의 취지, 즉 좋은 기분으로 점심식사나 하는 것을 박살 내는 것이라고 판단되어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기만 했다. 

 

1988년, 나는 면 단위 고등학교에서 2년째 선생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무지막지한 폭력을 받으면서 중 고교를 졸업했고, 그 시절 선생을 하면서 단 한 번의 반성도 없이 그 무지막지한 행동을 아이들에게 자행했다. 문득 그 무지막지함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우연한 기회에 알았고, 그 와류 속에서 '전교협'과 '전교조'가 탄생하였다. 이념적으로야 민족이니 민주니 하는 말이 있었지만 그 속에는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교육을 통해 이 땅에 시민으로 성장시키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래서 전교조 처음의 기치는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이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군사정부 시절의 참혹했던 비인권적 교육환경을 그리워하는 교사들과 같이 밥을 먹고 집으로 온 뒤 오후 내내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왜 그분들은 그 시절을 그리워할까?  


먼저 그분들은 권위의 시대를 살아왔다. 그리하여 그 권위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에게 체화되어버렸고 그 사실을 본인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학생들이 그 권위에 도전하게 되었고 위기에 빠진 선생님들의 권위의식이 찾아낸 방법은 강제적으로라도 그 권위를 강요하고 싶어 진 것이다. 그것이 회귀의 배경일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변화하는 학습환경과 학생들의 상황에 대한 무관심이다. 학교는 사회와 동일한 궤도 위에서 움직이는 살아있는 생명체에 가깝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학습환경의 변화와 학습내용의 변화는 그 속도가 갈수록 빨라진다. 학생들은 매일 그 엄청난 변화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 교사들은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삶에서 배워 온 방식대로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있는 아이들을 지도하려 한다. 당연히 아이들은 저항하고 동시에 그 어떤 권위도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뼈 아프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7~80년대 폭압의 시대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른다. 군대 생활이 힘들기로 유명한 해병대, 공수부대 출신들은 제대 후에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지고 그 시절의 고통과 경험을 유지 미화하려 한다. 인간의 심리 저변에 깔린 변종의 보상심리인데, 그 50대 선생님들이 중 고교 시절 지내온 문제의 비인권적 학교 문화가 당시에는 힘들었어도 지나고 보니 좋았다는 식의 심리로 전환되면서, 지금의 아이들에게 자신들과 동일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지금의 아이들이 문제행동을 일으키지 않고 자신이 권위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이다. 전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그런 생각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극우집단의 논리와 다를 바 없는 무서운 논리인 것이다.  


50대 중 후반을 넘어선 나 역시 돌이켜보면 정말 부끄러운 교직의 역사가 너무나 많다.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일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했다. 당시 졸업생들을 만나면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야 나에게 좋은 말로 사람 만들어주셨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말이 곧 당시 나의 행동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 좌중을 압도했던 그 사회과 교사가 가지고 있는 비 민주적, 비 인권적 생각이 사실은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다. 7~80년대를 거쳐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습득된 무서운 생각들이 그대로 유지되어 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단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더 무섭고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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