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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Jun 28. 2018

권고 전학

한 달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반 학생 중 한 명이 수업시간에 잤는데 교사가 잠을 깨우자 깨는 과정에서 교사에게 좋지 못한 행동을 했다. 이것을 교사가 문제 삼자 급기야 교사에게 하지 말아야 할 폭언을 했고, 여러 가지 일어나 말아야 할 일들이 일어난 뒤 결국 지도 불응으로 학생선도위원회에 회부되어 어제 최종 결론이 났다. 권고전학(전학조건부 퇴학)이 그 결론이었다.  


담임으로서 나는 그 학생에게 사실 아무런 미련이 없다. 매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학생이 나에게 보여 준 지난 몇 개월의 모습은 나를 매정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통상적으로 선도위원회에서 최후에 담임이 변론 아닌 변론을 하는 기회를 주는데 나는 할 말이 없다고 잘라 버렸다. 마음 한 구석이 석연치 않았지만 지금도 후회의 마음은 없다. 다만 능력 부족을 느낄 뿐이다. 아이들이 무섭게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놀라움과 실망, 그리고 스스로의 무력감만 커져 간다. 


가정적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그 아이는 1학년 때에도 교사의 지도 불응으로 선도위원회에 회부된 적이 있었다. 그 아이의 성장과정을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부모의 태도로 보아 그 또래 다른 아이들과 크게 다른 것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어른, 특히 교사에게 매우 반감이 크고 동시에 제멋대로 행동하려는 성향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매우 강했다. 1학년 이후로도 분노조절을 잘 하지 못하여 자주 여러 선생님과 분쟁이 생겼다.  


지난 1학기 동안 담임으로서 여러 번 그 아이를 지도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그 아이는 나의 지도에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변명만 늘어놓는 식의 대응만 해 왔다. 하기야 나의 시도는 불과 몇 번이니 큰 틀에서 본다면 나의 노력이 부족했음이 너무나 자명하다. 하지만 내 속에서 꾸역꾸역 솟는 변명의 말(우리 반 다른 아이들도 있는데~ 수업도 많은데~ 일주일에 20시간)도 없지는 않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의 이야기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 아이의 심리 상황이었다. 이제 18세의 고 2 학생에게 발견되지 말아야 할 어른들의 불손하고 좋지 못한 태도들이 그 아이를 지배하고 있었다.   


더불어 내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이미 나와 같은 지도 방식에 이력이 나 있는 아이였다.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지만 통상의 방법 외에는 그 어떤 시도도 해 볼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도 없지는 않다. 문제의 인문계 고교! 대학입시 외에는 그 어떤 이념도 방향도 무용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그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학교를 바꿔주는 것이라는 자기변명이 서서히 자기 확신이 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30년을 학교에 있었던 교사로서, 또 담임으로서 이번 일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천천히 復碁해 본다. 하지만 그 범위를 학생지도의 방법으로 한정해둔다. 왜냐하면 다른 문제점, 즉 그 아이의 인성이나 부모와의 관계, 가정환경, 성장과정 등은 나의 범위로 해결될 수 없을 문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잠을 자는 문제이다. 대학입시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인문계 고교에서 그것도 2학년 교실에서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이 우리 학교에서 거의 보편화되어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현상은 동일하다. 잠을 자는 학생이 많은지 적은 지의 문제일 뿐이다. 이유는 참으로 많다. 잠을 자지 않고서는 하루 8시간 수업을 견뎌내기 어려운 아이들이 많다. 인문계라는 부담이 이 상황을 가중시킨다. 지방에서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길은 학교 내신을 잘 받아야 하고 행동도 좋아야 하며 여러 가지 활동도 잘 해야 한다. 그런 학생은 어차피 정해져 있는데 모두에게 그 길을 강요하고 있는 이 인문계의 시스템은 교사인 내가 보아도 문제 투성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안이 없다. 학부모와 학교는 끊임없이 좋은 대학을 강조한다.  


완전히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문제의 이 아이는 이런 문제 때문에 그 상황에 빠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상황에 있는 교사인 내가 그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어쨌거나 이 아이는 기말고사를 다 치른 후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분노와 그 바탕이 치유되지 않는 이상 어느 학교든 대한민국 내의 모든 학교에서 교사와 갈등을 빚게 될 것이 분명하다. 교사로서 느끼는 이 한계상황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곧잘 이런 문제를 풀어나가곤 했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에너지가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그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는 갈 학교라고 생각하는지 담임교사에게도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종례도 하기 전에 가버렸다.  


이 문제를 대하는 교사들의 태도도 제각각 너무나 다양하다. 학생지도에 대한 철학이 모두 다르고, 또 교사 개인의 품성이 모두 다르며, 교직 경험의 폭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이런 문제에 대한 입장에 있어 최소한의 공통분모조차도 발견할 수 없음에 지금의 교직풍토와 환경이 얼마나 혼란스러운가를 알 수 있었다.  


내일은 금요일이다. 그 아이가 우리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날이 이제 일주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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