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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08. 2018

수학여행 후기

애써 얻으려 하지 마라!

애써 얻으려 하지 말아라! 


1일 


나는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한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지만 일상을 벗어나는 것 또한 양보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일이다. 여행은 바로 그 일상을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서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3박 4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 가는 수학여행은 그저 단순한 여행은 분명 아니다. 거기에는 많은 책임이 따르며 그만큼 부담감이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매일 계속되는 학교생활과 교실 수업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함께 세상을 여행하고, 짧지만 같은 곳에서 아이들과 아침을 맞이하는 수학여행은 나에게 있어 또 다른 여행의 경험이다. 


교사생활 동안 여러 번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그때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양한 추억과 경험이 아이들을 어른스럽게 만들었고 더불어 교사인 나에게도 성장의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더불어 아이들과의 관계도 튼튼해졌음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이번 수학여행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이번 수학여행의 특징은 2학년 전체 학생을 4팀으로 나누어 약간씩 경로의 차이를 두고, 숙소도 달리 하여 여행 전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두 개의 ‘과학’ 팀과 ‘생태’ 그리고 ‘역사’ 각 한 팀으로 구성되었는데 반별 수학여행이 주는 특별한 느낌은 없지만 주제별로 움직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나는 생태 팀에 배정되었는데 70명의 아이들과 나를 포함한 4명의 교사가 동행했다. 


첫 목적지는 부여다. 

 

삼국시대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때 백제의 수도였던 이 작은 도시는 우리가 아는 신라의 수도 경주와 너무 많이 비교되는 것도 사실이다. 초라한 느낌과 동시에 빈약한 고증을 통해 함부로 지어진 건물들, 유치한 단청과 시멘트로 급조된 기둥들을 보며 망국의 설움은 의외로 아주 오래 지속되고 있음을 본다.  


부소산을 한 바퀴 둘러 오는 것이 첫날 오전의 목표였는데, 아이들은 여기를 왜 걷는가에 의문이 생기는 모양이다. 가는 날은 조금 더웠다. 더운 날 산에 오르는 것이 그렇게 유쾌할 리는 없지만 소소한 불만이 너무 많다. 볼 것도 없다는 것과 이것을 보아서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아이들의 볼 멘 소리는 사실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사실 내가 보아도 그저 그런 부소산 위에 가끔씩 있는 정자의 모습은 그렇게 의미 있어 보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사실 백제와는 거의 무관한 정자들이어서 여기가 조선시대 한량들의 놀이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아이들에게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처지가 아닌가! 


역사책에 등장하는 백제의 삼충신을 모신 삼충사는 조선시대 건물 그대로이고 거기 모셔진 인물들의 초상은 전혀 백제스럽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백제스러운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몇 개의 유물과 중국 사료에서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이는 흔적으로 급조된 국적조차 모호한 삼충사의 영정들 앞에서 망국의 한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려오는 길에 1학년 때 반장이었던 아이가 “여기서 뭘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애써 무엇을 얻으려 하지 말아라!” “우리가 수학여행을 온 것은 특별히 무얼 얻거나 배우려 온 것이 아니라 학교를 벗어나 세상의 다양함을 그저 보고 느끼면 된다.”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그 아이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은 지난 10년 동안의 학교 생활 동안 끝없이 무엇을 배우려 했고, 또 그 배움을 강요당하며 살아왔다. 그렇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고 그렇지 않으면 성적을 올릴 수 없었다. 하여 늘 이런 강박에 시달린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여기에 온 목적은 무엇일까?” 아마도 나의 이야기조차도 의미를 파악하려 할지도 모른다. 


점심을 먹고 궁남지를 들렀다.  

봄 햇살 가득한 궁남지 풍경

궁남지는 『삼국사기』 무왕 35년(634) “3월에 궁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 리나 먼 곳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못 언덕에는 수양버들을 심고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方杖仙山: 도교에서 신선이 노니는 산)을 모방하였다”라고 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연못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서동공원으로 명명되어 있는데 아마도 무왕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서동요’가 그 연원일 것이다. 


역시 아이들은 이 공원에 왜 왔는지 무엇을 보라는 것인지 의아스러운 표정이다. 연꽃의 잔해만 잔뜩 남은 연못과 특별할 것 하나도 없는 정자(이름은 거창하게 포룡정이다.)를 보며 나 역시 이 궁남지를 여행 코스에 넣은 것에 대하여 조금은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그만인 장소인 듯했다. 개나리가 피어나고 동시에 초록이 돋는 궁남지에서 나는 몇 개의 감정을 추려서 이런 시 한 편을 썼다. 


於抱龍亭* 포룡정에서 

風和垂柳新草生 (풍화수류신초생) 바람 따뜻하니 늘어진 버드나무 새싹이 돋고, 

花片夢下徘淵中 (화편몽하배연중) 꽃 잎은 꿈처럼 내려 연못 위를 오라가락. 

國破幾化留談屢** (국파기화류담루) 나라가 망했으니 같은 것 하나 없지만 이야기만 남아, 

鯉魚知誺噞水中 (리어지치엄수중) 잉어는 아는지 모르는지 물속에서 뻐끔뻐끔. 


* 抱龍亭은 궁남지 가운데 있는 정자 이름. 

** 두보의 春望, 첫 구절을 용사함. 


그러함에도 아이들은 교실에서보다는 훨씬 행복해 보였다. 잘 알고 있었지만 자연이 주는 에너지는 그 어떤 차별도 없이 누구에게나 지극하다.  


숙소는 용인시 소재 양지 파인 리조트이다. 부여로부터 올라가는 길목에 이름도 생소한 알 수 없는 생태체험시설을 들렀으나 뱀 몇 마리와 수족관 몇 개, 그리고 앵무새 몇 마리가 전부인 시설이어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의문이지만 여행사의 농간인지 아니면 여행비가 정말 적어서인지는 몰라도 왠지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첫날밤은 아무래도 아이들이 가져온 술이 문제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10시가 넘어서니 몇몇 아이들이 술에 취해 있음을 알았다. 사실 나는 어느 정도의 술은 허용할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 중 대부분은 18년 동안 이렇다 할 탈선을 거의 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아이들이다. 그들이 일생일대의 기회인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술 몇 잔을 마시는 것을 눈감아 주는 것이 비교육적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비난을 충분히 감당하겠다. 아이들은 술을 먹고 매우 차분하게 잠을 잤다. 아마도 새벽 2시가 넘었을 것인데, 이 정도면 매우 훌륭한 수준의 자제력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마음속으로 고마움마저 들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렇게 첫날 일정을 마쳤다. 


2일    

비가 오더니 서울에 도착하니 이처럼 햇살이 눈부시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것은 지극히 상대적인 풍경이다. 여행을 하는 우리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지만, 만물이 소생하는 이 계절에 내리는 비는 소중하며 아름다운 일이다. 어쨌거나 아이들은 비가 와서 좋지 않은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차에 탄 아이들의 모습에서 지난밤의 흔적이 역력하다.  


오늘은 서울 시내 대학을 둘러보는 대학 탐방 날이다. 비가 와서 걷기가 불편할까 걱정했는데 서울에 도착하니 비가 그치고 경복궁 주차장에서는 심지어 햇살이 비친다. 약간 쌀쌀한 날씨였지만 아이들이 대학 탐방하기에는 그만인 날씨다.  

인사동 갤러리에서 만난 작품. 매우 특이한 세계를 보여준다.

나와 3명의 지도교사는 인근 인사동 거리를 구경했다. 모처럼 맞이하는 한가로운 풍경이다. 갤러리 두 곳을 들렸는데 전시된 작품들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갤러리를 들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예술을 통해 생계를 해결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길임을 알게 된다. 아직 우리나라의 여건이 무르익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뿐이다. 예술작품을 단순하게 돈으로 치환하는 것은 문제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그들의 예술적 영감을 펼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마련되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이러한 공간이 허용되어 있다. 어쩌면 위대한 예술적 영감이 이런 현실 탓에 빛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점심을 각자 먹고 모인 아이들은 대학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37명이 탄 우리 차에서는 가까운 신촌에 있는 대학에 다녀온 아이들이 많은 듯 보였다. 아이들의 표정은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았는데 실제로 내년 대학입시를 치르고 난 후 자신들이 가 본 대학에 입학할 가능성을 생각하다 보니 그런 태도와 분위기가 나왔을 것이다. 갈수록 어렵고 힘들어지는 상위권 대학의 입학은 지방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암울한 미래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나도 우울해진다.  

에버랜드에 핀 튜울립, 자본의 악취와 권력의 오만함이 있지만 어쩌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오후 일정은 에버랜드다.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단연 압도적으로 좋아하는 곳이기에 나의 선입견이나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심각한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에버랜드는 해마다 매출 증가세가 뚜렷하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의 전형적인 예가 에버랜드가 아닐까 추정해본다.  


밤 9시까지 놀이동산을 돌아다닌 아이들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자겠다는 말을 연발한다. 오전 대학 탐방에다가 에버랜드에서 어림잡아 8~9km를 걷고 놀이기구도 탔으니 아무리 젊은 피라 할지라도 오늘은 피곤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2시가 넘으니 방들이 조용하다. 그렇게 두 번째 날이 갔다. 


3일 


어제보다 더 많은 비가 온다. 날짜를 잘못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봄비가 내리면서 온도가 낮다. 감기에 걸린 아이들도 있어 걱정이 된다. 오늘은 인천에 있는 차이나 타운과 일산 킨텍스, 그리고 고척돔에서 야구 경기 관람이 예정되어 있는 날이다. 우중에 운전하시는 분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래 저래 비가 문제다.  


인천은 IFEZ(국제 자유 경제 지구)를 도시의 중요 정책으로 하는 항구도시다. 최근 송도지구를 IFEZ로 만들어 뭔가를 해보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직도 송도지구의 경제적 열기는 미미한 실정이다. 관 주도의 경제 정책은 항상 실물경제를 따라잡지 못하는 면이 많다. 행정조직은 느리고 둔감하며 매우 비탄력적이어서 급변하는 세계 무역의 흐름에 편승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직접 본 IFEZ 컨트롤 타워도 왠지 썰렁해 보였다. 

인천은 근대 개항기에 중국 상인들이 처음으로 들어온 지역이다. 그런 이유로 송도에 차이나타운이 생겼고 역사가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는 거기서 짜장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화교학교를 지나며 중국인들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교 담벼락에 그려진 경극과 사자춤을 보며 이 땅과 중국의 미묘한 차이를 본다. 


수학여행을 기획할 당시에는 KINTEX(Korea INTernational EXhibition Center : 한국 국제전시장)에서 모터쇼가 있을 것이라고 예정이 되었는데 갑자기 국제공작기계 전시로 바뀌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은 관심도 지식도 거의 없는 공작기계를 구경하게 되었다. 하기야 이런 전시회도 보고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조금 혼란스럽다. 아무런 기초 지식이 없는 공작기계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 것인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같이 동행한 선생님과는 나는 비교적 좋은 시간이었다. 


야구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어야 하는데 비가 더 많이 온다. 아이들은 위기상황에 적응이 느리다. 비 내리는 것에도 당황한다. 도시락을 나누어 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야구장은 평일이라 관객이 많지 않았다. 멀리 외야에 앉은 관계로 경기의 느낌을 받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이 날 야구경기는 팽팽한 투수전이라 관객 입장에서는 참으로 무료한 경기였다. 아이들은 외야에 강림하신(?) 치어리더에 혼을 뺏겨버렸고 우리는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숙소로 돌아와 버렸다. 


마지막 밤을 보내는 아이들은 꽁꽁 숨겨뒀던 술을 다시 꺼냈고 평소 순진하고 얌전한 아이들도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발그레하다. 선생이 혼낼 줄 알았는데 조용히 자라고 이야기하니 오히려 저들이 더 미안해한다. 그러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은 이미 금지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또 스스로 그 금지를 알기 때문에 그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할 것이 분명하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교육은 바로 이런 모양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요가 아니라 자유의지에 따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조절과 통제야 말로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일 것이다. 그래도 1시까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2시가 넘으니 고요해졌다.  


4일 


날씨가 겨울처럼 춥다. 이상하지만 적응하기로 한다. 우리가 살아온 날 동안 날씨의 변화를 바탕으로 이상기온이니 어쩌니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어쨌거나 추운 날씨였지만 대신 비가 그쳤다. 다행이다. 오늘은 서울에 가서 공연을 한 편 관람하고 점심식사 뒤 집으로 간다. 아이들은 이제 지쳐 보인다. 3박 4일 동안 계속되는 일정과 짧은 수면시간이 원인일 것이다. 서울까지 가는 차 속에서 대부분이 잠을 잔다.  

HERO 공연 중 4명의 페인터들이 그려낸 마이클 잭슨. 처음 우리는 이 그림인지 몰랐다.

서울에서 본 공연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행복한 프로그램이었다. 4명의 페인터(배우)들이 직접 미술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경쾌한 코미디 마임과 신나는 춤 등을 통해 세련된 무대 언어로 표현한 공연을 보면서 매우 행복하였다. 여행 말미에 문득 주어진 선물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대사가 없는 마임 형식의 공연은 우리에게 더 많은 생각을 던져주었다. 미술작품이 구성되는 과정을 스릴러 영화처럼 만드는 매우 특이한 설정에서부터 유명화가들을 모티브로 하는 팀 이름까지 매우 색다른 경험을 우리에게 주었다.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아마도 여행의 끝에서 오는 아쉬움을 바탕으로 하는 복잡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다른 팀 이야기는 월요일 학교에서 들을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느낌은 공유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공유의 바탕 위에서 배려가 중심이 되는 독창성이 생겨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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