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와 월식
1. 월식
달은 지구 주위를 시속 약 1022km 속도로 움직인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시속 약 107,229km의 속도로 움직인다. 그런가 하면 태양은 우리 은하의 핵을 중심으로 시속 약 900,000km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데 이때 우리 지구를 포함한 다른 행성들이 이 태양을 따라 돌고 있는 것이다. 달은 한 달 만에, 지구는 일 년 만에, 태양은 약 2억 2천5백만 년 만에 제 자리로 돌아온다 실로 어마 어마한 일들이 찰나의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위키 백과 참조)
그런데 태양에 의해 반사되는 빛을 받는 지구와 태양이 이렇게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면서 서로의 그림자에 의해 가려지는 현상이 바로 일식이고 월식이다. 오늘 새벽 그 월식이 일어났고 그것을 촬영하기 위해 꽤나 분주한 새벽을 보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이렇듯 지극하고 정교한 움직임이 오랫동안 인간들에게는 전설이 되었고 아직도 뭔가 일어날 것만 같은 어설픈 기대감을 주고 있다.
영어 Eclipse는 그리스어 ekleipsis – ‘포기’ 또는 ‘버림’에서 유래되었고 라틴어 혹은 고대 그리스어의 어원 상으로도 ‘ek'는 "out" ‘leipein’ 은 "to leave"를 의미한다. 종합해보자면 Eclipse는 무엇인가 사라지거나 버려지는 것으로부터 유래된 말이다. 서양에서는 달 혹은 태양이 의도에 의해 사라지거나 혹은 버려지는 것으로 이해했다면 동양에서는 달이나 태양이 자체적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月蝕(월식)에서 蝕은 좀 먹는다는 뜻이다.
붉게 사라지는 달을 보며 우주의 외딴곳, 작은 행성 위에서 지극히 유한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나의 존재를 우주적으로 확장시켜본다. 얼마 전 지구를 떠난 노회찬은 밤하늘 저기 어드메쯤 다른 별에서 붉게 사라지는 달을 분명히 보고 있을 것이다.
2. 더위
엄청난 열기 속에 하루하루를 견딘다. 체온에 육박하는 열기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우리의 호흡을 위협하지만 딱히 특별한 대책은 없다. 그저 조용히 독서하고 정진하거나 때론 더운 열기와 맞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인 듯하다.
덥다는 실체와 그것을 느끼는 나와의 중간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리학적으로 공간을 채우는 공기 따위의 물질적인 요소는 논외로 한다.
더위라는 현상을 하나의 실체로 인정하고 그 맞은편에 또 다른 실체인 내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더위라는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지만 나의 감각기관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분명 실재하고 있는 실체다. 단지 실체의 일반적 조건인 형태를 이루지 않았기 때문에 시각으로만 느낄 수 없을 뿐, 그 외 모든 감각으로 더위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 더위는 실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더위라는 실체를 느끼는 것인가? 아니면 더위라는 실체의 작용이 나를 덥게 만드는 것인가?
내가 더위를 느낀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 감각이 될 공산이 크다. 사람마다 느끼는 더위의 정도는 다양하다. 하여 일률적으로 더위라는 실체의 범위를 정하는 것은 매우 무의미한 일이다. 주관적 감각을 논의하여 일반화한다는 것은 그 오류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더위를 느껴서 더워진다는 것은 일단 오류 가능성이 많은 문제이기 때문에 다시 논외로 한다.
그러면 더위라는 실체가 나를 덥게 만드는 것이 남는다. 이것도 더위라는 불완전한 실체 탓에 완전히 객관적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를테면 더위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라면 ‘나’라는 존재가 느끼는 더위의 정도를 계량화하지 못하는 이상, 얼마나 덥게 만드는 가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상황이 될 공산이 크다. 결국 더위라는 실체와 그 더위를 느끼는 우리와의 상관관계로 더위를 느끼는 구조를 설명할 수 없는 논리적 교착상태에 바지게 된다.
그러면 더위를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언제나 발표되는 기상정보와 그 정보에 대한 몸의 기억, 내가 더위를 느낀다는 것 속에는 객관적 지표로 계량화된 더위에, 이미 오래전부터 축적된 나의 선험적인 감각들이 움직이게 되고 거기에다 실재하는 햇살의 강도 그리고 습도 등이 그러한 감각의 뒤를 채우는 방식으로 더위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순차적 경험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일기예보와 온도계 등이 우리의 일상에서 사라진다면 실재 느끼는 더위보다는 덜 더운 여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더위를 느끼는 것과 더위가 나를 덥게 만드는 것은 결과적으로 동일하지만 ‘나’라는 실체에 대한 생각을 그 사실에 겹쳐 놓으면 이렇듯 여러 가지 복잡하고 다양한 생각이 가능해진다.
그 사이 더위를 약간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