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는가?
벌써 20년이 넘었구만! 그 동안 편지 한 장 보내지 못했음에 그저 미안할 따름이네. 계절이 수십 번이나 바뀌었고 이제 내 머리에도 흰머리가 보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여전하다고 믿고 있네.
이제는 희미해진 기억의 터널 속에서 우리가 함께했던 그 시절과 조우하지만 선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처음 자네를 본 것은 30년 전, 1988년 부산 미 문화원 점거 농성 당시로 기억하네. 당시 나는 풋내기 교사였고 춘계방학이던 그 무렵 농성 지원차 거기를 방문했고 자네는 그곳을 지키던 전투경찰이었었지. 참 별스런 인연이었어. 방문을 제지당하자 몸싸움이 있었고, 그 와중에 나는 인근 파출소로 끌려갔는데 문득 자네가 다가와 고향을 물었지. 자네는 서상면, 나는 안의면 그렇게 우리는 금방 아는 사이가 되었지.
나보다 4살 어린 자네는 실업계를 나왔고 제대 후에 창원의 모 회사에 취업을 하고 내게 이런저런 일을 깨알 같은 편지로 적어 보냈었지.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조합에 대한 자네의 열정이 두려울 만큼이었지만 나 역시 그런 와중에 있었던지라 우리는 그렇게 세월의 와류에 휩쓸렸지.
92년인가 문득 해고자 신분으로 내 앞에 나타난 자네는 조금 더 일찍 해고되었던 나를 위로하면서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이야기했지. 그리고 소식이 없었지. 휴대폰은 고사하고 전화 통화조차 어려웠던 그 시절이었어. 94년 나는 복직이 되었고 무심하게도 자네의 소식은 까맣게 잊어버렸었지. 그리고 어느 해 여름, 안의에 갔더니 자네는 이미 93년경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더군. 아마도 나를 보러 온 92년이 우리 인연의 끝이었던 가보네. 야속한 사람.
문득 오래된 책 정리를 하다가 빛바랜 종이를 한 장 발견했는데 그 종이는 다름 아닌 88년 미 문화원 점거 농성에 대한 나의 시 한 편이었다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거기 자네가 있더군. 기막힌 시대, 기막힌 곳에서 기막힌 인연으로 잠시 만났다가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된 우리의 인연을 생각하며 이 가을 자네에게 편지를 쓴다네.
잘 계시게.
그때 쓴 시.
한글 맞춤법은 당시 기준.
제목: 나는,
저주가
사랑이나 진실에 기생하는
현실,
가슴과 가슴을 두려워하고
눈물의 순수를 무시하는
그런 파탄.
존재의 의미를
철저히 파괴당하면서도
스스로를 방치하는
무서운 무관심,
그러함에도
분연히 사랑을 위해
순수를 위해
떨쳐 설 수 없는
허무의 타산.
이것은
어쩌면 고통 없는 진리,
행동 없는 이론이겠읍니다.
그러나
순수와 양심
그 뿌리부터 강간당한
폐허의 이 시대에,
야만과 겸허가 야합하며
억압과 자유는 은밀히 간통하고
분노와 정의는
자살해버린
작은 말단조차 찾을 길 없는
적막과 암울의 이 시대에,
분노를 삼키면
배신의 늪을 걷고
다시 분노로 돌아서면
절망에 허덕이는
치졸한 논리의 극단만이 무성한
상실의 이 시대에,
고통 없는 진리와
행동 없는 이론은
비겁한 양심으로 살아있기 위한
스스로의 보호막이겠읍니다.
수많은 번민과 회의 속에서
죽음보다 더 검고
피 보다 더 붉은
공허의 몸부림으로,
이미 사멸해버린
정열과 분노로,
비열한 생존의 변명을
난,
늘어놓읍니다.
어디에선가
외로이,
절망과 공허와 억압을 딛고
새벽을 여는 함성이
들려옵니다.
1988.2. 미 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에 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