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조국이 임명되었다.
그의 이름처럼 조국의 부름을 받은 조국이, 조국을 위해 조국을 희생하여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그에게 주어졌다. 조국은 사법시험 합격을 하지 않은 법무부 장관이다.
사법시험을 생각하니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름 법대를 나온 나는, 거의 10번 정도 사법시험에 도전하여 모두 실패했다. 심심찮게 1차에 통과하기도 하고 심지어 2차에도 통과한 적도 있으나 결국 최종 합격의 문턱을 넘지 못하였다.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짐을 내려놓았다. 아직도 내 책꽂이에는 그 흔적들이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사실 사법시험을 통과한 그들은 조금 특별하다. 그 특별한 사람들이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된다. 그런 그들에게 국가는 엄청난 권력을 쥐어준다. 특별한 그들이 특별한 권력을 쥐니 이제는 거칠 것이 없다. 국가가 쥐어준 권력보다 더 넓게 권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권력을 이용하여 惹鬧를 부리기도 한다.
사법시험을 통과한 그들은 사법연수원을 거쳐 검사와 판사로 임용된 후 몇 년 있지 않아 초심이었던 공정에 대한 사명감은 모두 던져 버리고 오히려 법을 이용하여 공공을 위협하고, 사리를 취하며 법 해석의 기준을 자의적으로(마치 고무줄처럼) 적용한다. 국가가 요구하는 엄정과 강직은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로 무시해 버리고 날카롭게 벼린 권력의 칼날을 제 것 인양 자신들의 호주머니에 넣고 위세를 부리니 이는 시정 불량배와 다름이 없다. 오히려 그들보다 더 그들 같은 존재가 되고 만다.
최근에 임명된 강직의 대명사 윤모 검찰총장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그럼 조직에 충성하는 모양이다. 조직? 어떤 조직? 국가도 조직이니 국가에 충성하겠다는 말인데 과연 국가에 충성하는 일이 무엇일까? 일제 시대 독립운동이나 전쟁에서 적을 무찌르는 일은 확실히 국가에 충성하는 것 같은데, 조국 사태 이후의 검찰의 행보도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일까? 그런데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윤 총장이 말하는 그 조직이 국가가 아니라 검찰이 아닐까 하는 매우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그런데 마음은 자꾸 믿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 검찰을 조국이 개혁, 아니 혁파, 아니 박살…… 어쨌든 바꿔야 한다. 이 조직을 그대로 두고 이 땅의 법치와 이 땅의 정의는 왜곡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국은 청문회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거세게 욕을 먹고 있는데 그 욕에 대한 분노의 에너지를 모아 모아 저 서슬 퍼런 검찰을 바꾸는데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검찰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사람의 자유를 제한해야만 한다. 그래서 당연히 다른 사람의 사정을 잘 고려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할 때도 있을 수 있다. 즉, 그 고려의 대상이 사회적 약자인 경우에는 그러한 여지를 충분히 두어야 한다. 하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 늘 고려의 대상은 가진 자와 강자들이었다. 이것을 깨는 것이 최소한의 공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을 조국이 해 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