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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Oct 05. 2016

일상성에 대하여(3)

두 개의 그림에 나타난 일상의 해석

일상에 대한 해석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한 구조화된 삶의 과정을 우리는 일상(日常)이라고 부른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고 난 뒤부터 매일 반복되는 인간의 삶이었지만 이것을 일상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분석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근대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것을 일상성(Quotodiennete)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킨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일상을 예술의 주제로 삼는다는 것은 매우 많은 위험요소가 있다. 왜냐하면 예술이란 일상을 넘어서는 것에 대한 미적 추구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우리가 쉽게 감지할 수 없는 요소들이 숨겨져 있을 수 있는데, 그 절묘한 순간이 묘사된 그림이 있다.

Interieur mit Mutter und kind(실내장식과 엄마 그리고 아이) 1815 독일 피나코테크

일화적 소묘(逸話적 素描)


물병과 컵이 있는 탁자 위에 작은 여성용 지갑이 놓여 있다. 볼 살이 통통한 아기가 애완견을 만지고, 엄마는 어쩐 일인지 아기는 쳐다보지 않고 정면의 약간 위 쪽을 응시하고 있다. 목에 두른 스카프와 헤어 스타일, 그리고 애완견으로 보아 19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부를 축적한 유럽의 중산층 여인임을 알 수 있다. 그 유력한 증거는 탁자 위의 유리 병과 유리컵인데, 19세기 초, 유리는 역시 산업화의 덕으로 왕족이나 귀족 가문으로부터 중산층까지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엄마는 아기와의 교감이나 사랑을 느끼고 있는 표정으로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어찌 보면 약간 굳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저렇게 예쁜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랑스러운 엄마의 표정은 분명 아니다. 일상의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 법 하지만 단지 이 그림에서 엄마의 표정이나 태도로는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자세히 보면 엄마는 아이를 무릎에 단지 ‘앉혀 놓은’ 상태로만 보인다.


브아이(Louis-Léopold Boilly : 1761~1845)가 그리는 그림 속에는 언제나 어떤 종류의 逸話가 숨어 있다. 분명하게 드러낼 수 없지만 뭔가 알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을 그는 즐겨 그렸다. 브아이는 벨기에 노르 출생으로 1785년 파리로 진출한 그는 세밀하고 정교한 관찰에 의한 묘사가 돋보이는 그림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 프랑스혁명 지도자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그들의 초상화들을 그렸다.


그의 그림들은 마치 스냅사진처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내재된 장면의 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그림에서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림이다. 그 이유는 그림 속에 다양한 장치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즉, 엄마의 시선이나 아기의 위치, 탁자 위의 파우치, 반쯤 보이는 술 병, 그리고브아이 인물화에 자주 등장하는 애완견 등이 逸話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엄마품에 있는 아이를 보자. 세네 살 정도의 남자아이로 추정되는 이 아이는 애완견을 어루만지고 애완견은 아이의 손을 핥고 있다. 옷은 입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목욕을 막 마치고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분명 목욕을 시킨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스카프를 두른 우아한 옷차림으로 아기 목욕을 시킬 수는 없다. 유모가 있고 어쩌면 아기는 그 유모를 더 따를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아기와 엄마의 친밀감이 그림에는 보이지 않는다. 일상에 매몰된 중산층 여인의 모습을 브아이는 절묘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Junge Frau, beim Schein einer Lampe nahend(램프 아래서 바느질 하는 여인) 1823, 독일 피나코테크


일상에 대한 비더마이어(Biedermeier)적 해석


매우 현대적인 느낌이 나는 스탠드 밑에서 바느질하는 여인이 있다. 등불은 바느질하기에 충분히 밝다. 탁자 위에는 가위며 실 꾸러미가 보이고 약간은 희미하지만 스탠드 옆으로 옷을 재단하는데 필요한 핀 꽂이도 보인다. 아마도 바느질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인 모양인데 바구니에 아직 해야 할 일감이 조금 있어 보인다. 그 위로 두꺼운 성경도 보인다.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케르스팅(Georg Friedrich Kersting 1785-1847)은 북 독일의 Güstrow에서 1785년 유리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덴마크의 코펜하겐 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하였고 여기서 그는 그의 작품 전체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투명한 색채’의 사용에 대한 감각을 배우게 된다. 이는 당시 덴마크 미술의 특징으로서 그 뒤 독일 미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케르스팅은 당시 화가들 중에서 데생 실력이 뛰어나 덴마크 학교 재학 시절 많은 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 데생 실력은 그의 그림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데생 실력이 그림 내부에서 하나의 정형성을 띄게 되고 그 정형성은 각각의 그림을 넘어 새로운 예술적 프레임으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당시 비 더마 이어 양식의 정신과 맞아떨어지게 되고 케르스팅은 이 예술 양식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비더마이어 양식이란 19세기 초, 독일에서 발흥한 예술적 경향으로서 경건한 일상의 느낌과 안락한 보통 사람의 삶을 나타내는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 예술의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후 비더마이어 양식은 지금까지 예술의 단순한 관람자였던 중산층들이 점차 그들의 의견이 반영된 예술을 원했고 그것이 반영되어 독자적인 예술 사조로 성장하게 된다.


거기에 나폴레옹 전쟁 이후 오스트리아의 수상이었던 메테르니히는 정치적 계산에 따라 혁신적 귀족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보수적 중산층 중심의 예술 운동을 장려하였고 그 결과 비 더마 이어 양식은 프로이센,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 당시 합스부르크의 지배 하에 있던 여러 나라의 예술운동으로 번져 나갔다. 비 더 마이어는 문학, 건축, 음악 등으로 나타났고 그중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부문은 실내장식과 가구제작이었다.


천정으로부터 드리워져 있는 커튼의 모양과 끝 부분의 장식, 그리고 벽의 질감과 색채의 조화에 맞는 탁자의 배치는 비 더 마이어 양식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독일의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또, 그림에서 아래로 지긋하게 보는 화가의 시선과 스탠드로부터 번져 나오는 투명한 광량은 비 더마 이어 양식과 케르스팅이동시에 추구했던 미적 가치인 안락한 일상의 행복과 편안함(Gemütlichkeit)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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