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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Apr 18. 2020

푸른 봄 날.

綺麗*


濃盡必枯滅 (농진필고멸) 짙어지면 마침내 말라 사라지나니,

淡綠亦無爲 (담록역무위) 연 초록 또한 무위로다.

獨囁不放逸*(독섭불방일) 방일하지 않으려 홀로 중얼거려도,

吾眼尋常新 (오안심상신) 내 눈은 언제나 새로움만 찾는구나.


2020년 4월 18일. 만사를 제쳐두고 아침 일찍 봄 산을 걷는다. 새롭게 돋은 나뭇잎과 풀잎이 연초록으로 빛나고 있었다. 부처께서는 이것을 번뇌라 했을 것이고, 장자는 이것을 무위라 했겠지만 지금 이 풍경을 보는 나는 그런 생각이 전혀 나지 않고 그저 한 없이 그 연초록에 빠져 휘둘리고 있다. 


이 휘둘림의 본질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중 하나는 새로움에 대한 욕망일 것이다. 새 것, 새롭게 난 잎, 그리하여 그 엷은 초록에 나의 영혼은 걷잡을 수가 없다. 사실 그렇게 빠져들어도, 또 헤매고 있어도 부도덕한 것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 마음을 쉽게 풀어버리면 다시 가다듬기가 쉽지 않다. 하여 선현들은 끝없이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제목을 기려로 한 것은 4월의 신록이 그 어떤 문학작품보다도 아름답고 곱기 때문이다.     


* 綺麗(기려)의 본 뜻은 비단처럼 아름다운 詩句를 일컫는 말이나 여기서는 아름다운 풍경을 이야기한다. 기려는 사공 도의 24시 품 중 제9 풍격이다. 


* 不放逸(불방일: 放逸(방일)이란 자기를 잊고 또 스스로 제어하지 않아 온갖 유혹에 끌려다니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불방일이란 그런 상태에 빠지는 일 없이 스스로 자제함과 동시에 매사에 집중을 지속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수행의 바탕이 되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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