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之跡 바람의 흔적
氣爲騰天地*(기위등천지) 기운은 천지를 뛰노나니,
抹山挪麥穗 (말산나맥수) 산을 쓰다듬고 보리 이삭을 휘네.
郊勢自亘上*(교세자긍상) 들판 정취는 절로 뻗쳐오르고,
吾像無形悠 (오상무형유) 내 모습은 형체도 없이 멀어지네.
2020년 4월 22일 점심시간. 아름다운 급식을 먹고 산책을 하니, 바람이 거세다. 온도도 제법 낮고 바람이 거세게 부니 춥다. 우리 속담에 ‘보리 누름에 중 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예 선현들의 기후 감각은 틀림이 없다.
보리밭 위로 바람이 우우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흔적 없는 바람이 몰아치니 이제 막 이삭이 난 보리들이 허리를 휘며 그 바람을 가볍게 맞이한다. 보리 이삭을 지난 바람은 싱싱한 연두 빛 잎들을 흔들어 일제히 잎 뒤를 보이게 하더니 멀리 산으로 가서 가지 많은 소나무를 흔들고 바닥에 있는 키 작은 풀들을 흔들어 놓는다. 그 바람 따라 나무들과 풀들은 수정을 하고 씨앗을 만들어 다가올 여름을 준비한다. 다시 휘몰아쳐 오는 바람이 내 등 뒤에서 몰아치면, 나는 형체도 없이 바람과 함께 아득히 멀어진다.
* 汪砢玉(왕라옥)의 珊瑚網(산호망): 왕라옥 역시 명대 서화가이자 장서 가이다. 그의 책 이름이 산호망인데 그중에 나오는 구절을 용사함 (氣爲秀才於天地間)
* 沈周(심주): 중국 명대 중기의 문인화가. 자는 啓南(계남), 호는 石田(석전). 그가 쓴 석전집 중 제화시 한 구절을 의미만 용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