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日寬明 (추일관명) 천천히 밝아오는 가을날.
外化內常留*(외화내상유) 겉은 변하는데 속은 늘 머물려하고,
亦內外不遷 (역내외불천) 또한 속은 달라졌는데 겉은 그대로 있네.
奈化安不變 (내화안불변)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는가,
要剋不角天 (요극불각천) 세상은 다투어 이기려 하지 않음인 것을.
2020년 9월 12일 아침. 토요일 아침이라 천천히 걸었더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문득 가을이 오고 있다. 세상은 늘 변화 속에 있지만 깊지 못한 생각과 눈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눈에는 그 구별이 쉽지 않다. 그저 작은 온도의 변화에 반응을 하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천지 변화를 판단할 수 없다.
분명 가을날은 참 좋다. 변함없는 푸른빛의 하늘과, 색깔을 시시각각으로 바꾸는 나뭇잎들까지 가을은 참 좋은 계절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제 각각 고민과 시름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 가을이 모두에게 좋은 계절은 분명 아니다.
특히 올해는 미증유의 역병으로 이 땅의 민중들은 엄청난 어려움에 처해 있다. 몇 번의 태풍과 기록적인 폭우로 추수철이 되어도 그렇게 즐겁지 못한 농민들, 임금을 체불하고 회사를 강제 폐업 신고한 공장의 노동자들, 역병으로 사람들이 오지 않아 폐업 아닌 폐업을 하고 있는 영세자영업자들, 그런가 하면 여전히 무엇인가를 알리기 위해 오늘도 단식 농성에 철야 농성을 하는 힘없는 사람들에게 이 가을은 단지 을씨년스럽게 추워지는 날의 시작일 뿐일지도 모른다.
역병이 없던 시절에도 변변한 일자리 하나 구하지 못하는 2~30대의 수 백만 구직자들, 평생을 바쳐 일하고 헐렁한 육신으로 나와야만 하는 5~60대 힘없는 퇴직자들, 병상에서 무서운 질병과 오늘도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자들과 그 보호자들에게 이 가을은 다만 여름 다음에 있는 온도의 변화일 뿐, 어떤 변화도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방송사마다 뉴스 말미에 기상캐스터들은 앞으로 있을 단풍의 남하와 아름다운 계절의 상황을 참으로 세세하게 알려준다.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지만 정작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하는지 스스로 애매해진다. 물론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어울려 살아간다. 유사 이래 그 어떤 시대에도 차별과 갈등, 그리고 고통은 있어왔고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법칙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나 황홀해하는 이 계절이 누구에게는 그 어떤 의미도 없는 계절일 수 있고 더욱더 누구에게는 추위 때문에 싸늘해질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는 계절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깊어지는 계절을 너무나 행복하게 즐기다가 문득 이런 생각에 미치니 미안한 마음이 크다. 혼자만 사치스럽게 계절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해 본다.
* 『장자』 知北遊의 마지막 부분, 공자와 안회의 대화를 용사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