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철학 수업을 하면서 자주 좌절을 겪는다. 아니 어쩌면 큰 벽 앞에서 막혀 버린 기분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꾸만 문제의 방향을 아이들로 돌리고 싶어 하는 나의 이 얇은 마음자리가 안타깝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오늘은 제1 장 ‘나’를 찾아서 라는 단원을 마치는 날이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1단원을 마친 지금 내가 가진 솔직한 생각은 “이 수업을 지속할 수 있을까?” 혹은 “내 능력의 한계인가?” 하는 희미한 의심들이 곳곳에서 솟아나고 있다. 오늘은 1단원의 정리를 해 볼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했다. 주제는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신이, 다른 사람과 구별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고 적어보자.”였다.
아이들이 잘 쓰지 못할 것 같아 구체적인 질문 5개를 만들었다. (외모, 행동과 버릇, 말투, 생각이나 태도, 그 외 ‘나’에게만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부분) 질문지를 나눠주기 전에 나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이 세상에 선생님 만이 가지고 있는 외모와 행동과 버릇 기타 등등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난 뒤 질문지를 나눠 주었으나 아이들은 질문지를 앞에 놓고 멍 때리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잘 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을 하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것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하지만 아이들의 멍한 표정을 마주하고 있자니 나도 모르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유는 많다. 아마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6년 이상의 학교 교육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를테면 ‘올바르다’와 ‘틀리다’로 정해진 규칙 속에서 본인의 생각을 함부로 표현해서 겪은 수많은 잔 상처가 아이들을 오늘날 이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정답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그것 아니면 점수를 주지 않는 냉혹한 현실을 아이들은 절감하면서 지난 6년 이상의 교육을 받아 온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을 표현하면 혹시나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와 문제의식을 아이들은 가정에서 내내 배워왔고 여전히 배우고 있다. 기성세대가 가진 자기표현의 제한(다른 사람으로부터의 危害를 최소화할 방어수단)을 아이들은 잠재적으로 배웠을 것이고 때론 직접적으로 그런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침묵이 그나마 나은 사회 분위기를 아이들은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그것을 글로 쓰는 것이 또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지를 아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이 써 놓은 글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뿐이었다. 본인이 사투리를 쓰는 것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것이라고 쓴 학생이 있는가 하면 짜증이 많은 것을 자신의 태도 특징이라고 썼다. 자신 만의 특징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한 두 줄을 써 놓고 아이들은 시간 내내 멍 때리기를 하고 있었다.
나의 관점으로 본다면 확실히 나의 교육방법에 문제가 있다. 하여 나는 아이들처럼 나의 문제를 솔직하게 나열해 본다. ‘너무 어려운 주제가 아닌가?’ ‘지나치게 나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가?’ ‘아이들의 인지 수준과 능력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지나치게 公理에 사로잡힌 것은 아닐까?’
호흡을 가다듬고 아주 길게 생각해 보기로 한다. 제2 장은 좀 더 깊이 내려간다. 바로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