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중학교 철학수업(25)

by 김준식

2020.11.30. 1교시


오늘 수업은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토대로 자신의 의견을 써 보는 것이다. 쓰기 주제는 다음과 같다.


‘존재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생각해 보고 자신의 ‘존재’ 때문에 ‘존재’하는(‘존재’가 증명되는) 것을 모두 적어보자.이다.


예시: 내가 ‘존재’함으로 나의 부모님의 ‘존재’가 확인된다. 내가 ‘존재’함으로 지수중학교의 ‘존재’가 확인된다.


2주 동안 아이들은 모든 것을 잊었다. 이런 예상은 언제나 빗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예상했던 일이라 당황스럽지는 않다. 사실 철학의 세계에서 몇 개의 객관적 사실을 파악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거의 없거나 미미하다.


‘존재’의 이야기부터 다시 시작했다.


‘존재자’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말한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사물,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그리고 읽고 있는 우리가 ‘존재자’이다. 그런가 하면 ‘존재’는 바로 ‘존재자’의 근거이다. ‘존재자’를 ‘존재자’ 일 수 있게 해 주는 그 어떤 것이 바로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지만 ‘존재’는 ‘있음’이고 ‘존재자’는 ‘있는 것’이다. 즉, ‘있음’은 우리가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상황과 감각을 넘어서 있는 모든 것으로 확대할 수 있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있는 것’은 ‘있음’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감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지정되고 특별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말은 어렵지만 실상은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존재자’인 나와 그 배경이 되는 ‘존재’의 이야기인 셈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존재’라는 이야기에서 지난 시간 내가 예로 들어 설명했던 여러 이야기를 떠 올렸다. 다행이기는 하지만 나무를 떠올려야 하는데 나뭇잎과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만 기억해냈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역시 30년 이상의 관성이 나에게 존재한다. 결론을 내놓고 덤비는 나의 어리석음을 본다. 아이들의 이야기 중에서 내 마음에 맞는 이야기에만 귀 기울이는 이 좋지 못한 습벽을 나는 언제 버릴 것인가?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난 뒤 비로소 쓰기를 시작했다. 그나마 이 분위기도 아이들이 제공해 준 셈이다. 나는 참 틀에 갇힌 선생이다.


아이들의 대답은 참으로 휘황했다. 맞다, 틀리다가 없는 답이지만 아이들은 매우 고민하여 답을 쓴다. 자신이 존재함으로써 존재하는 것들을 자신의 주변에서 찾고 조금씩 범위를 넓히는 아이들이 참으로 대견하다. 하지만 약간의 오류도 있다. 자신의 신체에(내가 존재함으로 내 머리카락이 존재한다?) 대한 이야기는 자칫 순환 함정에 빠지기 쉬워서 방향을 수정해 주었다.


오늘 쓰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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