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아님) 이동진 평론가가 올해의 한국 영화 1위로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을 뽑았다. 주제를 대하는 감독의 태도와 영화 완성도 모두 뛰어나다는 평이다.
처음 이 영화에 호기심을 갖게 된 건 박정민 배우의 샤라웃이었다. 어느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박정민은 엄청난 것이 세상에 나왔다며 유난을 떨었고, SNS에서도 이 영화는 꼭 봐야 한다는 게시물이, 절대 내용을 모른 채 보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영화관을 가진 않을 것 같았는데, 마침 평소 듣던 팟캐스트에서 세계의 주인을 다루었다. (두둠칫 스테이션 부먹클럽, feat. 해인와 미화리, 이 둘의 케미가 좋은데 이제 안 하신다고) 팟캐스트를 통해 영화의 줄거리와 인상적인 장면, 충격적인 신을 모두 알게 되었다.
며칠 후 아침 출근길에 여둘톡을 듣는데 두 작가님이 세계의 주인 GV를 한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곳이고, 날짜도 괜찮았다. 이 아침에 듣는 사람도 많지 않을 테니 자리가 있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이 영화를 봐야겠다 싶어 얼른 티켓팅을 했다. GV가 늦어지면 일찍 나가야 하니 오른쪽 끝 구석의 통로 쪽 자리를 잡았다.(와서 보니 출입문에서 가장 먼 자리였다.)
영화관에는 일찍 도착했다. 거의 사람이 없는 상영관을 홀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불이 꺼지고 광고를 보는데 저 아래 여둘톡 선우, 하나 작가님이 들어오는 게 얼핏 보였다. 역시 GV전에 같이 영화도 보시는 군. 그런데 점점 내 쪽으로 왔다. 내가 있는 계단 끝까지 올라오더니 내 앞을 지나가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렇게 내 옆에 선우님이 그 옆에 하나님이 앉았다. 성격상 아는 체를 하진 않았고 옆에서 나는 어떤 소리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내심 반가웠다. 영화가 끝나고 GV시간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 두 분이 나가기 좋게 길을 터 주었다.
영화는 기대한 그대로였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고 인상적인 장면은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신은 충격적이었다. 사실 이미 다 알고 있어서 생각만큼은 아니거나 몰랐으면 좋았겠다 싶은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GV. 여툴톡을 라이브로 듣는 기분인데, 라이브가 맞나 싶을 정도로 두 분의 말솜씨와 티키타카가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어떤 분이 자신의 경험을 어렵게 나눠주었다. 누구라도 말을 덧붙이기 어려운 분위기. 와중에 하나님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 속 한 장면인데, 어린 남동생이 친구와 다투다 싸우기를 포기하고 그냥 놀았다고 하자 누나가 왜 싸우지 않고 참았냐고 물었고, 남동생은 '그럼 언제 놀아?' 라고 답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또 여러 말을 장황하게 하기 시작했고, 어떤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괜찮을 때도 있고 괜찮지 않을 때도 있다. 괜찮아지고 싶다 혹은 이렇게 괜찮아도 될까?라는 생각에 매몰될 수 있다. 그렇게 괜찮다와 괜찮지 않다를 반복하면서, 당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가 싶던 차에 불쑥 물었다. '그럼 언제 살아?'... 이거구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거였다. 아마 우리는 앞으로도 이랬다 저랬다 할 것이라고, 그때그때 좋았다가도 슬퍼질 것이고, 행복하다가도 괴로울 것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있다면,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말을 그 청중에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기억나는 대로 적은 것이라 정확하진 않다)
이 글을 쓰는데 오래전 읽은 최진영 작가의 글도 생각났다. 아픈 엄마가 방문을 잠그고 힘들어하는데, 딸이 문 밖에서 엄마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엄마는 사람 다 죽는다고 체념한 듯 말한다. 딸은 자기도 안다고, 그런데 사람은 또 다 산다고 소리친다.
어차피 다 죽을 거지만 사람들은 다 산다. 다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