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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용 Dec 08. 2019

작은 조직에서
성평등 약속문 만들기

김신아, 한주연, 백희원

기본소득이란 의제로 모인 작은 조직에서 '기본소득'이 아닌 주제로 두 번째 책을 냈다. 이름하여 '작은 조직에서 성평등 약속문 만들기' 다.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김신아, 한주연, 백희원은 그 과정을 회원들과 공유하며 9개월에 걸쳐 성평등 약속 및 규약을 만들었고, 그 시간을 회고하며 나눈 대화와 결과물을 책에 담았다. 


이들은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안전하게 이 조직에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를 상기하며 약속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피해자'가 되는 순간 조직에서 안전함을 느끼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개념을 넘어, 누군가 느낄 수 있는 피해감을 계속 상기하고 이야기하는 장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혹 누가 이 책을 보고 '성평등 약속문'을 만들려고 한다면, '성평등 약속문'이 아닌 '성평등 약속문 만들기'를 만들라고 권하고 싶다. (이 책처럼) 중요한 건 '약속문'이 아니라 '약속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과정'이다. 




발췌


-무력감에 대처할 무기, '매뉴얼'이 필요하다


27

"성평등 규정을 만드는 과정을 조직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29

구성원 전부의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하고, 필요하다는 걸 느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이게 자신한테 적용되는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31

"피해자가 안전하게 이 조직에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장이 워크숍을 통해서 나왔고, 나중에 규약을 만들 때나 약속문 만들 때 계속 상기했다. 


33

지금이라면 사건이 공론화 형태로 드러나는 상황까지 가지 않는 게 중요하고, 피해자가 안전하게 사건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관점에서 논의 공간을 분리시켜 피해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뭐 이런 것들을 상상할 수 있을 텐데, 그때는 '대체 누가 그걸 하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 결과물보다 중요한 건 성평등 장치를 마련하는 '과정'이다


50

"어떤 '지향'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구체적 내역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55

운영위와 얘기하면서 가해자 처벌이 사건해결의 끝이 아니라는 걸, 그 외에도 조직 내에서 할 수 있는게 많다는 걸, 처벌이 해결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67

규정이라는 게, 성폭력 사건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지만, 만들었기 때문에 사건이 훨씬 덜 일어나게 되는 효과는 클 수 밖에 없다. 모두가 문제적 상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더 예민해지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이걸 보면서 공감대를 만들어 갈 것이고.


79

우리가 만든 내용이 완벽해서 공유하는 게 아니라, 준비하면서 워낙 레퍼런스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에, 100개 중에 10개 밖에 모른다고 해도 그 10개를 공유하는 게 의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4

<평등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한국여성의전화 구성원들의 약속> 중

셋. 활동 연차, 역할, 직책, 친밀도, 상근 여부 등에 따른 자신의 권력을 인지하고, 누구나 제약 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다섯. 신체 접촉, 성적인 말과 행동에 대한 허용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며 여러 조건에 의해 달라질 수 있음을 알고,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노력한다.

여섯. 나에게 당연한 것이 상대방에게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알고 배려한다.

일곱. 내가 느낀 불편함에 주목하고, 함께 해결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86

"약속문을 지키지 못했을 때 어김에 집중하기보다 발언에 대해 다같이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요."라는 약속문 항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미리 위축 돼서 말을 하지 못하는 건 정말 좋지 않기 때문에, 약속문을 어길 수 있으며, 잘못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함께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거다. 


91

피치가 만든 코스터 6종에 새긴 문장:

"혹시 이 농담은 나만 즐거운 건가 생각해요", "사생활은 말하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을 수 있어요",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를 구분해요", "동료가 난처할 때 내 한 마디는 힘이 돼요", "외모보다는 능력을 칭찬해요"


약속을 위한 새로운 약속들


108

중요한 것은 규약을 적절한 간격으로 함께 검토하는 과정 그 자체다. 어떤 주기로, 누구와 함께, 어떻게 의견을 모을지 등에 관한 합의를 담아서 약속 갱신을 정례화 해야 한다. 


109

여전히 우리의 과제로 남아있는 것은 오프라인 거점이 없는 온라인 조직에 더 적합한 규약을 만드는 일이다. 


110

'성평등'을 포괄하는 더 넓은 범위의 평등한 조직문화를 위한 약속문이 될 수 있도록 외연을 넓히는 것도 중요한 미션이 될 수 있다. 


"규약에 상호존댓말 쓰기가 있잖아요. 그래도 그게 있어서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올 때, 좋은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의도치 않아도 친분이 있거나 하는 경우에 알게 모르게 생기는 격차가 있잖아요. 그런 사적인 관계가 덜 작용하게 된 것 같아요."


111

약속문은 이 보이지 않는 얼굴들과 마주볼 수 있게 해주는 작은 불빛이다. 잘 아는, 신뢰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하고만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BIYN의 약속에 동의하고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궁리를 계속해볼 수 있게끔 돕는 빛. 혹은 낯선 사람이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운영하는 조직의 중요한 회의 자리에 선선히 발걸음을 하게끔 이끄는 빛, 빛 그 자체가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함께 볼 수 있는 빛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움직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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