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의 보이는 라디오 중
빌라선샤인 Dear Newomen #54 에서 발견한 콘텐츠. 문학동네 보이는 라디오에 출연한 김금희 작가가 산문<사랑 밖의 모든 말들>의 일부를 낭독해주었다. 지금 나의 일이 즐겁지 않은 사람들에게 김금희 작가가 건네고 싶은 말은 이랬다.
"더이상 이 일이 즐겁지 않다는 당신에게
나는 지금 당신과 내가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하면서 적는 거야. 그러니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다했던 내 일, 내 작업, 내 직장, 내 노동이 더이상 즐겁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 그 느낌은 무엇보다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겠지?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과 태도에 날카로워지고 상처받았어. 화가 나고 슬프고 억울해하다가
더 시간이 지나면서 무력해졌을 거야. 더이상 상처조차 패지 않는 단단한 체념.
하지만 새해를 이런 기분으로 맞을 수는 없어서 나는 한동안 혼자서 지내봤어. 무리하게 여러 사람들과 만나거나 그들의 인정과 관심을 갈구하지 않고 최소한의 사람, 최소한의 일, 최소한의 여행과 최소한의 생각으로.
창공을 날아 이동하는 장거리 여행자 같은 새들이 아니라 아파트 화단 어딘가에서 마주친, 아주 짧게 날아 먹이를 구하고 날갯짓을 하고 금세 내려앉는 새들처럼, 무언가를 많이 얻고 멀리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야. 우리는 그렇게 최소의 방법으로 의외의 나를 구해낼 수 있지.
다행이 생각들이 조금씩 바뀌었어. 그러니까 내가 이 일에서 완전히 마음이 떠났다기보다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웠다는 것이고 이 일을 이제 하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이 일을 건강하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가깝다고. 물론 당신은 정말 이 일이 즐겁지 않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당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떠나야겠지. 하지만 그렇게 결론 내리기 전에 세밀하게 마음을 조정해보는 시간을 갖길. 우리가 조용히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동안만은 다른 어떤 방해도 없이 오직 당신 자신만이 있기를 바랄게. 우리에게 또다시 주어진 일 년이라는 시간은 누구도 아닌 우리만의 차지이니까."
에디터가 특히 공감한 문장은 "이 일을 이제 하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이 일을 건강하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가깝다고."였다.
나는 '건강'이란 단어를 오래된 뻔한 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내가 정말 원했던 건 '건강'이었다. 내 일을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건강하게 잘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한 조건과 약속을 계속 찾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도 내 일을 건강하게 잘 오래도록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