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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대훈 Jul 08. 2023

기억을 지우며 와버린 도시개조와 러셀 스퀘어

철학과 도시 경영. 13

지형이 사라지면 기억은 사라진다.


대전도 삼국시대의 계족산 산성부터 중세, 근세로 이어지는 역사와 문화유산이 없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근세, 현대로 내려오면서 지형을 지우고 유산을 헐어 내는 방식으로 도시를 개발했기 때문에, 서울 정동이나 군산과 같은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지형의 역사, 대중의 기억을 복원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다. 

 

(대전계족산성(大田鷄足山城),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삼국시대의 백제산성, 나는 이 계족산 인근 성남동, 용전동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 중반까지 살았다. 그래서 소년기에 곧잘 이 성 언저리에서 놀았다. 대전시가 차분하게 성곽 복원사업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유년시절 선화동에서 시작하여 성남동, 용전동, 중동, 태평동, 둔산동을 거치며 60년 가까이 대전에서 살아왔다. 그래서 한밭의 지형과 변화에 대해 기억한다. 최근 팔십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를 모시고 유년기에 살던 집을 찾았다. 다행히 선화동 옛 법원 뒤쪽 감나무집을 찾을 수 있었다. 빌라가 들어서 풍광은 많이 변했지만, 다행히 골목 형태는 남아있었다. 57년 전의 기억을 찾았다는 반가움과 안도감에 잠시 행복해졌다. 그러나 재개발에 내밀려 땅의 흔적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러셀스퀘어의 호텔과 형태의 회복력 

 


서유럽 도시 대부분은 중.근세 시절의 도시기반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살고 있어, 시간을 추적하며 걷는 재미가 있다. 런던은 사진으로 보는 300년 전이나, 내가 처음 런던에 갔던 30년 전이나, 지금의 도시 형태에서 장소를 추적할 수 있다. 


청년시절에 방문했던 런던 블룸즈버리에 있는 러셀 스퀘어(Russell Square)의 골목과 호텔을 제 작년에도 안내인 없이, 지도도 없이 도 찾아갈 수 있었다. 런던은 올드타운을 지우고 뉴타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올드타운의 지형과 골목과 주요 건축을 남기고 연수가 지난 것들에 새로운(New) 것을 입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의 뼈대는 남고 부분적으로 조금씩 허물을 벗는다. 

 

대전은? 지운다. 동구 소제동의 호수는 철도 관사촌을 만들면서 메워졌다. 대동여지도에 있는 대덕구 회덕동 마을과 79칸에 이르렀다는 관아 터는 어디로 갔는가? 중구에서도 충남 강경에 남아있는 정도의 근대 건축물은 찾을 수 없다. 유성 온천 지구에 근대 온천의 흔적은 어디에 있는가? 

 

과학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유성 도룡동에 있는 93 대전엑스포 유산은 거의 헐어 버렸다. 서구 둔산의 지형도 마찬가지! 비행 훈련을 하던 공군기술교육단 인근 언덕은 밀었고, 그 터는 아파트촌이 되었다. 숲으로 가득 찼던 가수원과 관저동은 광폭의 간선도로가 지역을 양단하고 있다. 그곳 역시 아파트 공화국이 되어버렸다.


3,000년의 트로이 전설도 복원할 수 있었던 지형


지형이 사라지면 기억은 사라진다. 반면 고유한 지형을 남기면 트로이 유적처럼 3,000년의 전설도 복원할 수 있다. 구도심에서 지형, 시대를 반영한 건축, 오래된 수목을 밀어 버리고 완전히 새로 짓는 도시개발은 폭력이다. 도시 회복의 근거인 역사 유산과 시민 대중의 기억을 담고 있는 지형을 훼손하면서 철저히 콘크리트, 자동차 중심, 획일적인 아파트 도시를 만들어 버린 대전의 도시개발을 제인 제이콥스 여사나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이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런 식으로 도시개발을 하면 60년 정도는 사용할 수 있어도, 시안이나 경주처럼 천년 이상을 지속할 수 있는 원천을 잃어버리게 된다. 대전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부분 도시도 개발시대에 자본과 토건의 수익에 바쳐진 제물들이다. 

 

도시계획, 건축, 토목, 교통, 녹지등에 식견이 필요한  도시계획위원회 


광역시에는 여러 위원회가 있다. 회의도 제대로 하지 않는 유명무실한 것이 많은데 ‘도시계획위원회’는 다르다. 시가 결정하는 도시관리계획, 다른 법률에서 심의를 거치도록 한 사항, 중앙도시계획위원회의 위임사항 등에 대한 심의, 자문하는 위원회로써, 지난 월평공원 갈마지구 심의와 재심의에서 보듯이 영향력이 크고 역할도 중요하다. 위원회는 시의원, 공무원, 교수, 연구원들로 구성했는데, 향토 사학자, 시민운동가, 언론인, 갈등전문가도 함께 해야 한다. 

 

(지형은 시민의 집단 무의식에 영향을 준다. 고속도로같이 광폭의 10차선 도로가 지구를 양단하고 있다. 이 지구를 개발할 때, 원주민의 토지도 반물리적인 방법으로 수용했을 것이다. 만약 원래의 굴곡진 지형을 살리는 쪽으로 개발했으면 주거와 업무지구, 생태가 조화로왔을 것이다. 지금 역사, 전통, 고유성.... 이런 것은 남아있지 않다. 이런식의 개발은 폭력이다)



민선 8기 대전시는 중구 부사동의 베이스볼 드림파크 사업을 재검토하여 추진한다고 한다. 좋은 체육 시설에는 찬성한다. 그러나 한밭종합운동장 전체를 헐고 다시 짓는 방식이 아니라, 1959년에 당시로는 최고 수준으로 지었고 지금도 거뜬히 사용하고 있는 주 경기장은 그대로 사용하고, 야구장을 확대 신축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선수들에 환호와 갈채를 보냈던 시민의 기억과 해방 이후의 근대 모더니즘 체육 유산은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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