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내 것인 줄로만 알았던 잠. 허나 한동안 잠은 내 것이 아닌 아이의 것이었다. 내 수면 시간이 아이의 수면 시간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수시로 자고, 또 수시로 깨는 아기를 두고 어느 누가 깊고 기다란 잠을 잘 수 있을까. 꼬박 1년 반을 그랬다. 아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까지.
주양육에 대한 욕심이 유독 컸다. 만 3세까지 만든 엄마와의 애착이 평생 가는 자산이라는 믿음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래된 결핍에서 비롯된 욕망일 것이다. 아이를 독점으로 보겠답시고 9년을 다니던 회사도 미련 없이 그만 두었고, 프리랜서로 밤낮 없이 일을 하면서도 기관에 보내지 않는 고집을 부렸다.
육아는 육아대로, 일은 일대로, 살림은 살림대로 잘해내고 싶은 마음. 그것들을 가득 쥐고는 잠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잠이 들어야, 내 잠을 줄여야 시간이라는 게 생겼으니까. 그렇게 하루 5시간 남짓을 자며 나를 갈아넣었다. 몸에 힘을 잔뜩 넣고 액셀만 밟아대니 엔진은 과열되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영원히 멈추는 것도 아닌데, 꼭 그럴 것만 같았다. 적어도 아이에게 보여줄 만한 모습이 아님은 분명했다.
더이상은 무리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에너지의 한계를 생생하게 겪고는 결국, 어린이집 문을 두들겼다. 아이는 감사하게도 수월하게 적응을 했다. 무엇보다 수면의 양과 질을 채우고 나니 빠른 속도로 내 바이오리듬을 되찾았다. 가득 이고 지던 모래주머니를 벗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채워진 에너지는 육아와 일, 삶에서 여러모로 윤활류가 되어주었다.
'모든 것을 잘하려는 마음'은 그 어떤 것도 잘해낼 수 없도록 만든다. 엄마 나이 30개월. 내려놓는 법을 온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다 잘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잘 살아보려는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