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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 쿡 Feb 21. 2020

나의 식당창업 분투기

10막.단골


부부 싸움은 더 잦았고 매월 마감할 때마다 남는 돈이라고는 간신히 한 사람 인건비가 남을까 말까였다. 

두 사람 인건비만 건질 수 있어도 좋으련만... 한 사람 인건비밖에 안 나오는 이 식당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 빚은 점점 늘어갔다. 

그때 나는 '감가상각'이라던지 카드수수료, 부가세 같은 단어 뜻도 몰랐고 그런 것을 내야 한다는 것도 까맣게 몰랐다. 

부가세와 소득세는 그 식당 망하고 폐업하면서 알았다.

그래도 가끔 바쁜 날도 있었다. 

점심에 술을 먹으러 오는 단골손님이 왔는데 단골이긴 하지만 별로 내 맘에 들지 않는 단골이었다.

오면 항상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나이가 지긋한 한의사였다.

그날은 세 사람을 더 데리고 왔다. 알바도 없고 이제 아내가 혼자 홀써빙을 다 봤었는데 그 사람들은 서빙을 하는 사람이 내 아내라는 것을 몰랐다.

음식이 나가고 정종이 나갔는데 술이 뜨겁지 않다고 아내 손을 잡고 놔주질 않았다.

잡은 손을 잔에 만져보라며 낄낄대며 아내를 희롱하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젊고 어렸기 때문에 그런 일은 나에게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얼굴이 벌게져서 울먹이는 아내를 한쪽으로 비키라 하고 그 테이블로 갔다.

아내는 내 성격을 알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애써 말렸지만 나는 몹시 흥분 상태여서 그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가서 정중히 이야기했다.

"누가 내 집사람 손잡았습니까?"

그러자 세 손님은 깜짝 놀랐다. 그 단골 한의사가 말하길 함께 오신 분이 00 도지사인데

 서빙 보는 아가씨가 친절하고 서빙을 잘해서 장난 좀 친 거라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바로 입에서 쌍욕이 나갔고 그 네 사람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도지사는커녕 대통령이라고 해도 한 대 갈길 기세였다. 

그리고 그날 장사는 그 걸고 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정중히 사과를 요구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젊은 혈기에 너무 화가 나서 또 예민해져서 그랬었다. 

그때는 내가 판단하는 것이 모두 옳은 것처럼 보였고 그것이 정의로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매출 많이 내주는 단골이었는데... 술값이고 뭐고 내쫓았으니...

후회는 하지 않았지만, 순간 화를 못 참고 그렇게 물불 가리지 않는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다

한 달 후 2002년 월드컵 본선이 시작되었다.

(20여 년이 지나고 나니 내가 화를 내거나 싸움을 했던 상황이 우습기만 하다. 그 당시야 심각하게 생각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는 상황들이다. 식당은 생각보다 많은 상황을 맞이한다. 그때마다 내 마음이 동요한다면 마음에 병이 생기거나 누군가에게 큰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식당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동요'를 줄여야 한다.) 

2009년 당시 옆을 확장해서 폴딩도어를 달았는데 옆가게가 구청에 찔러서 모두 철거하고 매장 축소 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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