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 쿡 Mar 05. 2020

나의 식당창업분투기

15막. 쫄망

쫄망

8평정도의 그 작은 식당이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였다. 

나는 미친 자신감으로 곧 일산에 매장을 하나 더 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일산에 식당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 식당 몇군데를 돌아다녀보고는 서둘러 장사할 식당을 정했다. 더 신중하게 알아봤어야 했는데 어딜 들어가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며칠뒤 화정동의 초밥집에 현수막을 걸었다

"축! 다시마 일산 라페스타점 10월중 오픈예정"

가진돈은 없었지만 빚을 내서라도 식당을 하고 싶었고 빌린돈의 이자보다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모두 빚을 내서 시작 했다. 

본점에 현수막을 걸고 난 뒤부터 매일같이 손님이 더 넘쳐났다. 바빠지면서 직원들은 음식을 대충대충 내주기 시작했다. 

초밥위에 생선도 들쭉날쭉 요리사 맘대로였다. 손님이 그렇게 매일같이 줄을 서서 먹게 되니 어떤 날은 4명의 식구가 와서 자리가 세 개밖에 없자 다른 가족은 앉아 먹고 아빠는 서서 먹는 진풍경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감사한 분들이지만 그때는 몰랐다.

마치 동네 사람들이 다시마가 분점 낸다는 말에 매장을 구경 온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나보다 실력이 부족한 직원들이 음식을 내어주는데도 손님들은 맛있다고 하며 나갔다. 

그렇게 손님이 많아지니 나도 조금씩 손님을 우습게 알기 시작했다. 손님이 많으니 친절하지 않아도 손님은 계속 올 것만 같았다.

매출이 늘어나는 만큼 직원들끼리의 사고와 손님과의 사고도 많았다. 일이 고되고 좁은 곳에서 12시간을 넘게 일을 하게 되니 툭하면 싸우고 술 먹고 다음날 무단결근이 잦았다.바쁜 매장이라 사람을 안구하고 업장을 운영할 수 없어 서둘러 구인광고를 내면 별의별 사람들이 면접을 왔다. 

그때는 사람을 뽑는 기준도 없어서 업장이 급하면 사람을 가리지 않고 대충 뽑았다. 그러다 보니 며칠 일해보지도 않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별 그지같은 인간들이 왔다가 일은 해보지도 않고 분위기만 흐리고 가네.'

문제의 원인을 항상 그사람들에게 돌렸다. 

업무의 전달이 일정하거나 정확하지 않고 시스템적으로 일을 하는 곳이 아니기때문에 구두 전달로만 업무를 전달했다. 그러다 보니 음식은 일정한 상품력을 유지하지 못했고 사고도 많이 일어났다. 내입에는 항상 "얼마전에 말해줬는데 왜 딴짓하냐!!"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진짜 생각없이 일을 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하는거지?'라고 그들을 원망했다.

(직원들을은 이런 박봉에 고되고 단순한 일을 하면서 생각하면서까지 근무하길 원하지 않는다. 일도 힘든데 생각까지 하라고 말하는것은 어쩌면 업주의 묙심일 수 있다. 그들이 원하는것은 적당한 급여에 적당한 손님이 오길 바라고 자신이 일해서 받는 보수 만큼 들어오길 가장 바란다. 게중에는 다른 성향의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일반적인 식당 종사자에 대한 기준이 그렇다는걸 잊어서는 안된다.) 


곧바로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인테리어를 할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이것저것 아는척했고 현재의 다시마와 비슷한 컨셉으로 하자는 제안을 인테리어 사장에게 했다.하지만 그 사장은 그 제안을 일부 받아들이고 일부는 저가 하고싶은 대로 공사를 진행했다. 

다 만들어진 식당은 참... 이상한 모양새가 되었다. 김밥집도 아니고 일식집도 아닌...

일산점의 오픈 전날... 

"사장님 저 다른곳에 들어가기로 했어요. 죄송합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역시 식당의 오픈은 다이나믹했다. 당연히 개00이라고 수천번은 욕을 했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오픈을 했다. 

초밥집으로 오픈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손님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처음부터 손님이 늘겠어? 좀 시간이 지나면 단골이 생기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어디선가 한번 들어봤던 말인데..라며 데자뷰같은 생각이 들었다.

장사가 점점 안되니 직원수를 줄였고 대우도 형편 없었다. 나는 항상 그럴때마다 '장사가 안되서...'라는 핑계로 그책임을 직원들에 돌리며 피해를 직원들에게 감당하도록 유도했다.  직원들의 불만으로 매장은 항상 시끄러웠다.


잔뜩 빚으로 시작한 식당이 잘 안되자 어머니와 아버지는 더 힘들어 하셨고 나와의 불화는 점점 더 커졌다.

두 개 매장을 운영한다는것은 그냥 매장 하나가 더 늘어나 사람을 더 뽑아서 하면 되는 개념이 아니었다. 

두개의 매장을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준비되어야 할것은 내 욕심을 줄이고 그들의 자율에 맡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것이 필요했다. (몇년 뒤에 알아챈 것이다.)

작은 식당 두개였지만 다섯 개 매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정신도 없고 너무 힘들었다.

6개월 쯤 지나고 보니 인테리어 회사는 나한테 바가지를 씌운것이었다. 그리고 상권을 자세히 둘러보니 내가 얻은 식당자리는 권리금을 줄 자리가 아니었는데 나는 권리금까지 줬다. 내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상황을 누구한테 말도 못했다. 말하면 내가 더 바보가 되기 때문이었다. 

분점은 내가 없는 날이면 매일 사건이 터졌다.

주방을 맡은 놈이 술만 먹으면 제끼는 바람에 내가 본점에서 근무하다가 중간에 그 매장으로 달려간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손님 컴플레인 아니면 무단결근, 직원끼리 다툼, 급여 문제, 주방장비가 고장 나거나...여기저기 땜방 다니고 사건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분점은 본점처럼 빠르게 손님이 늘지 않았다(식당이 손님이 늘어나는것을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시간을 얼마나 단축 할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어쨋든 식당은 손님에게 익숙해지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

매출이 없으니 직원을 더 채용하기 어려워 어머니가 한푼이라도 아끼겠다고 분점으로 가셨고 분점의 직원수는 거의 반으로 줄었다. 직원도 없는 곳에서 어머니는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것을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초밥집으로 6개월 운영하다가

초밥 조리사를 두지 않는 덮밥 전문점의 모양새로 리세팅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 놓으니 초밥을 먹으러 왔던 손님들 마저 떨어져 매출은 크게 더 줄었다. 그러자 직원을 또 줄이고 ...손님이 없어서 다시 메뉴 단가를 내렸다.

매출은 더 줄었다.(식당의 악순환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엄청 쉽다. 무서울 정도로 엄청 쉽다.)

그렇게 장사를 억지로 억지로 하다가 얼마 후 다시 하는 마음으로 어쩔수 없이 1000만원 이라는 돈을 들여 살짝 인테리어까지 변경해 낮에는 덮밥, 밤에는 이자까야로 변신하는 매장을 만들었다. 이렇게 바뀔때마다

점심과 저녁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줄 알았다..

그리고 열심히 몇 개월 장사했다.(이런짓이 바로 손님을 우습게 아는 증거이다. 손님은 생각보다 똑똑하다. 내가 장사가 안되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매장을 대충 둔갑하여 만들어도 그들은 그 의도를 안다. 그렇게 손님을 속이는 식당을 손님은 쉽게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매장이 되어 이 식당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듯 보였다. 

초밥손님도, 덮밥손님도,술손님도 아닌 이상한 손님만 오는듯했다.

누구도 이렇게 자주 바뀌는 식당은 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본점은 아직까지 손님으로 넘쳐났고 분점으로 땜빵을 하러 가다가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다. 

'또 망했구나...'

차를 돌리면서 분점으로 전화를 했다." 오늘까지만 영업하고 문 닫으세요."

본점에서 열심히 일하며 나는 분점이 곧 빠지기만을 기다렸다. 처음엔 권리금을 받고 싶은 욕심에 인테리어 비용과 내가 주고들어간 권리금을 붙여 내놨다. 하지만 가게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자 나는 몇개월 마다 권리금을 내렸고 급기야 무권리로 내놓았다. 

하지만 내가 재수가 없는건지 보러 오는 사람 조차 없었다. 중간에 몇몇사람이 내가 내놓은 권리금에서 깍아서 딜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난 권리금을 더 받기 위해서 기존 권리금에서 한푼도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1년이 넘도록 빠지지 않았고 그동안 밀린 월세로 보증금은 하나도 남지 않게되었다. 

(식당을 접기 위해서 상가를 내놓았다면 욕심부터 내놓아야한다. 적절한 권리금을 책정하여 내놓았다 하더라도 작자가 나타나면 첫번 작자에서 빼는것이 좋다. 조금 더 받기위해서 고집부리다가 결국 권리금은 커녕 보증금도 못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접는 가게는 서둘러 빼서 내가 다시 뭔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절약하는것이야 말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나는 아직 두개의 업장을 할 능력이 부족한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지도 개판인데 망한 가게를 몇천씩 권리금 줘가면서 그 식당을 얻다니...병신같은...'이 말을 빚을 갚아가는 내내 술만 마시면 중얼거렸다.

야심차게 시작했던 일산의 분점은 1년 반만에 완전히, 완전히 쫄딱 망했다. 

어떻게든 보증금만은 건지고 싶었지만 보증금은 커녕 철거를 해가라는 임대인에게 시달렸다. 

결국 보증금도 못 가지고 나오게 되자 매장에서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왔다. 주방기물부터 쓰다 남은 휴지까지...강화도어 잠금장치까지 뺏다가 문이 안 잠겨서 다시 끼우기도 하고...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나중엔 달려있던 전구까지 다 뺏더니 가게를 보러 온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사장님 등이 안 들어오네요? 등을 어디서 켜죠?"

나는 대답했다

"거기 등 없어요.촛불 가지고 가야 해요~"

식당을 망해서 전구까지 빼가는 심정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렇게 되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다 잃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거기서 별의 별 일을 당하며 직원과 가족과 지지고 복고...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렇게 안달복달 할때는 언제고 다 망해서 나오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미친건가...

그동안 1년이 넘게 전재산을 까먹고 속앓이만 했는데... '차라리 일찍 던져버리고 본점이나 신경 쓸걸.'하는 후회도 있었다. 

또다시 빚더미에 앉는 꼴이 됐다. 그래서 나는...새벽시장도 더 자주 다니고 전보다 미친듯이 더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술도 더 마시게 되고 몸도 함께 더 상해갔다. 

분점을 내면서 알게 된것은 주인이 자리에 없을때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알게 되었다. 


 (세번째 식당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그동안 쌓아온 나의 작은 경험에 내 고정관념이 더해져서 손님이 원하는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식당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화정에서 대박난 상황이 내가 잘해서 된거라는 착각과 그 착각대로만 만들면 당연히 새로운 지역에서도 대박 날거라는 오판에서 문제는 시작된것이다. 하지만 화정초밥집의 컨셉은 벌써 근처에 생기기 시작했었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매장은 일산에서는 매력적인 식당이 아니었다.게다가 직원을 관리할 능력이 부족한데다가 시스템은 전혀 없는 상태로 식당을 직원들에게 맡기는것은 성공 확률을 확실히 낮춘 요인이었다. )

작가의 이전글 나의 식당창업 분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