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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 쿡 Mar 04. 2020

나의 식당창업 분투기

14막. 허리

허리

첫 애의 초음파 사진을 봤을때 다른 아빠들도 그렇게 느꼈겠지만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아빠로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 어깨가 더 무거웠고 마음이 들떴다. 임신소식이 있던 바로 그날 나는 아내를 내 가게에서 해고하고 집에서 살림 할 사람으로 전격 채용했다. 

내일 당장 홀써빙이 어머니 뿐이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시장도 더 열심히 다니고 마치 미친사람처럼 일을 했다. 그러니 다행히도 매출은 점점 늘어 이제 생활비 걱정은 덜었다. 

매장내 전체 14석은 항상 만석에 하루 5회전은 기본이었다. 

나는 점점 자신감이 생겼고 손님이 너무 많아지자 일이 힘들어 이제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동네가 바뀌니까 내 실력을 좀 알아보는 사람이 많네. 역시 동네가 좋은 곳으로 왔었어야해'

내 실력에 이런 현상은 예견된 것이었고 오만함이 점점 커졌다.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때 내가 주문하던 수산물들의 상태가 좋지 않단걸 알았다. 수산물 사장은 이것도 좋다고 말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써온 재료와 달랐다.결국 어쩔수 없이 새벽에 수산시장을 직접 가보기로 했다.잠이 많은 나로서는 11시가 넘어 퇴근해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시장에 나온다는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가장의 힘으로 새벽에 기상할 수 있었다. 시장 보기는 처음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수산물의 품목별로 판매상이 모여있는 위치가 달랐다. 지금은 30분이면 끝낼 장보기가 처음에는 1시간 반이나 걸렸다.

역시나 새벽시장은 물건이 좋았다. 새벽에 일어나는것이 힘들지 일단 나오면 활기 넘치는 시장의 기운이 나에게 더 큰 자극을 주었다. 

모든 재료가 싱싱하기도 하고 싸기도 하고 직접 고르니 좋은 것만 골라 사올 수 있었다. 새벽시장을 갔다 오면 시계는 어느덧 6시를 넘겼다. 이것저것 많은 사입을 혼자 정리하고 손질하면 8시쯤 되고 배가 고파 어제 남은 밥에 김치와 단무지 몇 쪼가리를 먹고 나면 졸음이 몰려왔다. 하루 14시간이 넘는 근무에 새벽시장까지 다니는것은 정말 아오지탄광의 노동자 그 이상의 중노동이었다. 하지만 꼭 해내야 한다는 짐승같은 눈빛을 하고 견뎌냈다. 

 1시간가량 자고 일어나면 오픈 준비 시간. 엄청 넓은 8평의 매장 청소를 하고 나면 어머니와 아버지 아르바이트가 출근한다. 그렇게 하루 종일 쉬는 시간도 없이 일했다. 거의 6개월간 쉬는날도 없이 일을 하다보니 신경은 점점 더 날카로워 졌다. 밥을 먹고 있을 때 손님이 들어오면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밥 먹을 때 손님 들어오는게 제일 짜증 난다. 예전에 직원으로 생활 했을 때 '내가 식당하게 되면 밥먹는 시간만큼은 꼭 문을 닫아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시작하니 그놈의 돈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손님이 없어 매출이 저조했던 날은 마감하고 밤 10시가 다 되어서 손님이 "끝났어요?" 하고 들어올때가 많았다.

힘들어 쓰러질것 것 같은데...  하지만 오늘 매출이 없으니...

"아니요~아니요! 어서 들어오십시요. 제가 좀더 있으면 됩니다~^^" 반가우면서 실망하는 내 얼굴이 상상이 간다.'내일 새벽 시장도 가야하는데...'

그 손님이 만취되어 1시가 넘어서 문을 나설 때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소주에 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그냥 매장 바닥에서 박스를 깔고 쪽잠을 자다가 시장에 가기 일수 였다. 그 때문에 시장 다니면서 졸음운전도 많았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일어나 지지가 않았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병원도 갈 수가 없었다.

요며칠 허리가 아파서 숨도 쉬기 힘들었었는데...드디어 올 게 온 것이다. 겉으로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아파서라기 보다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내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여지껏 한치의 굽힘도 없었고, '다 덤벼~내가 다 해낼거야!!'라고 생각할 만큼 강했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누워서 꼼짝도 못하고 아내가 챙겨주는 밥을 누워서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가기 어려운 내 모습이 너무 참담했다. 얼른 일어나서 더 벌어야 빚도 갚고 해야 할 텐데... 그렇게 누워서 열흘을 보낸 후 일어나 병원에 치료를 다니다가 간신히 걷기 시작할 수 있을 때부터 바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치료가 다 안되고 그렇게 일을 한 것이 몇 년 뒤 나에게 큰 화가 올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젊어서 잘 몰랐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난 깊이 생각했다. '무작정 이렇게 일만 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이후 영업 중간에 편하게 밥을 먹고 좀 쉴 수 있는 브레이크 타임을 시작했다. 또 일주일에 하루는 문을 닫고 쉬기로 했다.

 식당에서 아버지가 편하게 앉아서 식사하시는 모습에 '내가 그동안 무슨 짓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장을 문닫는 날과 브레이크 시간을 정하는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돈을 버는것보다 나에게 더 중요한것이 무엇인지 깨닫게되는 계기였다. 

 조금 쉬기 시작하니 나에게 '여유'라는것이 생겼고 그 여유는 나의 눈과 생각을 바꿔주기 시작했다.  

드디어 문을 닫고 쉬는날 온가족이 다른 식당을 예약해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곧 큰애가 나를 보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때로는 살면서 목에 차오를정도로 힘들게 살때도 있다. 그것이 꼭 삶에 필요한 것이든 아니든 그 언덕을 넘고나면 아래의 왠만한 고비들은 힘든축에 들지 않게 된다. 또 어렵게 결정해 놓고 나중에 후회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훗날 돌아보면 그것이 별거 아닌것처럼 보일뿐 아니라 결정을 한시라도 미룬 것에 대한 후회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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