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 쿡 Mar 08. 2020

밥 좀 아는 남자.

#밥


초밥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라면 초밥 위의 생선을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초밥의 생명은 역시 잘 지어진 밥이다. 밥이 맛있는 초밥을 하기 위해서는 쌀이 좋아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새벽시장을 갔다 와서 주방에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쌀을 씻는 일이다. 초밥의 밥을 하려면 어느 정도 불려져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냉장고가 좁아도 귀한 꿀단지 모시듯 냉장고 안에 보관된 쌀을 꺼내 항상 같은 대접으로 4번을 퍼서 쌀을 씻기 시작한다. 쌀에 물을 한가득 부어 쌀을 일궈서 뿌연 물을 대충 버려낸다. 그다음 다시 물을 자작하게 부어 힘 있게 문지른다. 쌀은 보통 살살 씻어 영양분이 떨어지지 않게 하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잘못된 이야기이다. 쌀이 깨지지 않을 정도로 힘 있게 문질어 쌀에 있던 미강가루를 확실하게 세척해야 한다. 왜냐하면 쌀을 깨끗이 씻지 않으면 밥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쌀 군내가 나고 색깔도 빨리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쌀은 깨끗이 씻어야 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씻기는 해도 한겨울에 쌀을 씻는 것은 곤욕이긴 하다. 호호 불어도 손은 따듯해지지 않지만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재빨리 쌀을 씻는 손놀림은 소홀하지 않다. 쌀 알이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의 구멍이 있는 채반에 쌀을 모두 붓는다. 그리고 맑은 물이 아래로 흘러나오는 것이 보일 때까지 흐르는 물로 쌀을 세척한다. 채반에서 10분 정도 물이 빠지게 둔 다음 다시 통에 담아 정수물을 부어 쌀을 불리기 시작한다. 여름엔 30분 겨울엔 50분 정도가 적당하다. 

그렇게 불어난 쌀을 다시 채반에 받친다. 30분 정도 받쳐 물이 완전히 빠져나오면 밀봉할 수 있는 통에 담아 보관하고 다음날까지 사용한다. 냉장고 보관할 때는 반드시 밀봉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냉장고 냄새가 쌀에 베일수 있기 때문이다. 

솥에 불린 쌀과 다시마 한쪽을 넣고 레시피대로 정수물을 넣어 불을 붙이고 뚜껑을 덮는다. 불은 가장 센 불로 일단 시작해서 끓기 시작하면 뚜껑을 열어둔 상태로 중불로 밥을 한다. 솥에 있는 쌀이 물기가 없어져 가면 그때 뜸 불로 불을 약하게 하고 뚜껑을 덮어 김이 되도록 새 나가지 않도록 무거운 것을 올린다. 

보통 15분에서 17분이면 뜸이 다 들고 뜸이 든 후 솥의 뚜껑을 열어보면 밥알은 그 탱글한 자태로 모두 기립하여 있다. 


요리사가 되기 전 또 요리사로 일하면서 요리 서적에서는 '쌀을 살살 씻고... 많이 씻지 말고... 밥을 할 때 술을 넣고... 식용유도 좀 넣고... 그런데 내가 초밥집을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이 내용들이 대부분 틀렸다는 것이다.

요리서적에 나와있는 밥 짓는 방법에 대한 내용들은 아주 오래전 쌀의 품종이나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쌀의 상태가 좋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지금은 쌀이 좋아져 그런 조리법은 맞지 않을뿐더러 밥맛을 좌우하는 쌀을 보관하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쌀은 좋은 쌀을 고르는 눈이 있어야 하고

쌀은 온도에 상당히 민감해서 5도 이하의 일정한 온도에서 보관해야 하며 

쌀은 도정후 일정 온도에서 한 달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

쌀은 깨끗이 씻어야 하며

쌀은 정확한 레피시로 조리해야 한다. 

전 과정이 마지막 초밥 한 덩이를 위해서 신경 써야 하는 과정이고 이것이 내가 25년 동안 매일 밥을 해온 나만의 노하우이다. 

25년 동안 고작 이 정도 알아냈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알아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며 25년 간 해가는 것이 힘든 여정이다.  

요리란 이렇게 정확한 자신의 노하우로 수 없는 반복의 과정이 필요하다. 

초밥을 좋아하는 다양한 손님들이 있지만 기준은 초밥의 밥에 가장 예민한 손님을 기준으로 만들어 가아 하며 

모든 과정은 그 손님에게 최적화되도록 시스템을 맞춘다.

그 과정의 결과는 손님의 입에서 나오는 칭찬도 아니고 손님을 줄을 서게 하는 것도 아닌 오래도록 손님을 받을 수 있게 내가 버티고 살아남는 것이다.

결국 음식은 꼭짓점에 앉아 있는 손님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그들의 그 예민함이 나를 성장시키고 자극시켜 주기 때문이다.


밥의 맛은 결국 좋은 쌀이 결정한다.


#좋은 쌀이

#좋은 솥보다

#낫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식당창업 분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