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 쿡 Jan 20. 2019

식당일지 302.

풍경화


A는 아침 일찍 업장으로 곱게 싼 사각판을 두 손에 들고 들어왔다.
뭔가 부끄러운 듯 삐죽거리며 그것을 내 책상 위에 놓고 도망가듯 업장을 나갔다.
그 포장지 겉면에 이렇게 씌어 있었다 
'저의 꿈을 펼쳐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약속대로 처녀작 부끄럽지만 드립니다.' 
그동안 A가 열심히 그린 풍경화를 액자에 넣어 가져온 것이었다. 
A와 나의 인연은 8 년 전 홀서빙으로 시작했다. 그 뒤에 서로의 오해로 일을 그만두었다가 다시 인연이 되어 함께 일하게 된지 올해가 4년째다. 
그리고 작년에 A는 신분증을 위조한 미성년자에게 실수로 술을 판매하는 대형 사고를 치고 기가 죽어 있었다.



 3년 전 어느 날.
점심 장사를 끝내고 나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내가 물었다.
"과장. 과장은 꿈이 뭐였어?"
"저요?... 저... 어릴 적 꿈은 화가였어요."
"그래? 와... 진짜? 잘 어울린다. 근데 왜 화가 안 했어?"
"결혼하고 애들 키우고 장사하고 ... 경황이 없어서 못했죠"
"이제부터 그리면 되겠네. 내가 학원비 부담해줄게"
"아..진짜요?"


그 이후로 A는 업장 근처 미술학원을 쉬는 시간마다 다니게 되었고, 한동안 열심히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작년 업장에서 사고 이후로 학원은 그만두고 집에서만 그리는듯했다. 
나도 형편이 어려워져 학원비 지원이 끊겼고 A는 사고 이후 많이 의기소침했었다. 
나는 그녀에게 지나간 일이니 잊으라고 했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으리라. 워낙 책임감도 강하고 마음이 착한 A였다.
아침에 포장을 펼쳐 그림을 보는 순간 다소 뭉클했다. 
매일이 힘든 이 식당 생활 속에서 틈틈이 그림을 완성시킨 그녀의 의지와 끈기에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난 그림을 볼 줄 모르지만 이 그림은 정말 멋진 풍경화였다.


20여 년간 장사를 하면서 큰 고민 중 하나는 직원의 동기부여였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실현하는데 나와 함께 하게 할 것인가...' 
직원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서 많은 생각을 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인센티브를 주기도 하고 상품권을 주기도 하고 휴무를 많이 주면 그들에게 힘일 될까 주 5일제도 시행해 봤다. 그 외 여러 가지 복지 제도도 만들어봤지만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재작년에는 교육장까지 만들어 그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도록 마음치유 강사까지 불러 교육을 시작했다. 
결국 사업의 핵심은 '사람이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수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 2년 넘게 교육을 했다. 
그 교육으로 동기부여가 되어 그들이 이 회사를 자신의 회사처럼 생각하고 일해주길 바랐다. 주변 아는 사장들과 직원들까지 불러 교육에 참가시켰고 단기간에 되는 일이 아닌 만큼 다소 끈기를 가지고 장기간 노력해봤다. 
하지만 직원들은 점점 교육에 흥미를 잃었고 어떤 직원들은 교육이 받기 싫어 교육시간도 급여에 포함해 달라고 하는 직원도 있었고 그들이 귀중한 쉬는 시간에 왜 이런 교육을 왜 억지로 받아야 하냐고 불만을 표시하는 직원도 생겼다.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결국 들어간 비용 대비 미세한 동기부여가 되었을 뿐 그들의 근무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작년 중반 교육을 중단하고 교육장도 작년 말에 없앴다. 
아쉽게도 그들은 교육보다 쉬는 시간을 원했고 그 교육으로 달라지기를 원했던 나에게 손가락질하는 듯 보였다. 
그들의 꿈을 키워주고 싶었던 교육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가지 배운 점은 교육이란 배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기부여란 자연스러워야 한다. 
순수하지 못한 내 목적을 위해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결국 그들을 이용하는 것밖에 안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꿈을 갖고 그 꿈을 위해 실행하게 하는 것은 결국 그들 스스로의 몫임을 난 알았다. 
그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동기부여는 그들이 가진 꿈에 방해가 되지 않고 
그들이 꿈을 꾸며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 학원비나 외식비, 학비 걱정을 덜 하게 하는, 다시 말해 그들이 잡생각을 하지 않고 꿈에 집중하도록 급여 잘 주고 잘 쉬어주는 아주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동기부여는 식당업주의 큰 욕심일지 모른다.


벽에 걸린 A의 풍경화를 보면서 난 중얼거렸다.
'난 이제 억울하지 않다. 
그림이라도 건졌으니...'




작가의 이전글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