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
운칠기삼
엊그제 페북에서 우연히 한 포스팅을 보았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경기가 좋지 않아서 장사가 안 된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한심스럽다. 요즘 우리 매장은 매출이 더 오른다. 나는 그렇게 한탄할 시간에 고객을 위해 더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원하는 성공을 얻을 수 있다'
페북에서 그를 찾아보니 꽤 잘되는 식당 사장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간단히 빌리자면 그는 지금까지 남들 보다 훨씬 더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손님이 많아졌고 그렇기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떵떵거릴 만큼 장사도 잘된다고 한다. 또 지금은 대충 장사를 해도 점점 매출이 올라간다는 자랑 일색이었다. 다들 망해가는 지금, 대박 난 것처럼 보이는 그를 보며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포스팅 몇 개를 읽는 동안 나는 잠시 자괴감에 빠졌다.
‘난 20년 동안 장사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어떻게 저렇게 잘할까?’
배가 갑자기 아파왔다. 이런 느낌은 사실 한두번 느낀것은 아니다. 주변 후배들을 봐도 나이에 비해 너무 잘하는 친구들이 많다.
나 또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열심히 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동네 식당 중에서는 골목대장 노릇을 했었다.
내 위에 아무도 없었고 오만하기 그지 없을 뿐더러 누가 봐도 건방졌다. 나이가 윗사람들이 보기에 그래 보였겠지만 그래도 동네에서 장사 꽤 잘된다고 누구든 나에게 장사에 대한 무언가를 물어볼때면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잘 못하는 그들에게 눈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20년 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중간중간 나를 힘들게 했던 많은 순간들은 내가 이룬 모든 것들이 내 노력만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조금씩 깨닫게 해 주었다.
다른 장사꾼보다 많이 벌었던 것도, 매장을 여러 개 운영하게 된 것도, 아이들이 잘 커가는 것도, 좋은 직원들이 나와 함께 하는 것도, 가방끈도 짧은 내가 잠시나마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서는 기회를 갖게 된 것도 모두 운이 좋았던 것이다.
'내가 너무 열심히 했고 때에 맞춰 똑똑하게 결정하고 이끌어 지금까지 왔다'가 아니라,
나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식당을 오래 하다 보니 TV에서나 볼법한 외식업계의 대단한 CEO들이나 관련 업계의 소위 ‘거물’들과 호형호제가 되기도 한다.
그들과 함께 여행도 가고 이야기하고 교육도 함께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잘 나가는 후배들이 식당 선배인 나에게 덕담(?)을 해 줄 때면 부럽기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저렇게 엄청난 회사를 운영할까?’‘어떻게 저렇게 빨리 성장했을까?’하는 생각에 그들을 따라 하고 싶고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던 때도 있었다.
그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을 다니고 회사에 일찍 출근해 짧은 시간 일을 하고 책을 열심히 읽고 가정에 충실한 모습으로 산다고 이야기했다. 아직까지 크게 성공 본 적 없는 나는 그런 그들의 삶을 보며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고 그들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지금의 나에 대한 실망이 컸다. 그렇다고 그들의 말대로 따라하기란 또 쉽지도 않았다. 그런 대단한 기업가들이 말하는 성공담과 마인드를 많은 자영업자들도 배워 실행하고 싶었겠지만 그들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역시 그들은 나와 능력치 자체가 달랐던 것일까?
외식업에서 이런 배움의 분위기가 조성된지도 벌써 10여 년이 지났고 그 분위기에 편승해 지금 외식인들은 성공한 사업가들의 경영방식을 배우기 위해 해외도 멀다 하지 않고 가서 배우려고 노력했다.
언젠가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외식 기업가의 강연을 듣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저 사람은 자신이 말한 대로 하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진짜 그렇게 되는 건가? 그리고 그런 방식이 나하고 맞을까?'
‘그들의 성공이 과연 자신이 해 온 엄청난 노력과 재능으로 그들이 그렇게 잘해서 된 것일까.’
그의 입에서는 성경구절 같은 좋은 이야기들 일색이었고 세상의 좋아 보이는 이야기는 다 나오는 듯했다.
강연을 듣고 있는 청년과 젊은 사장들은 그의 이야기에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렇게 감명받아 꿈을 키워가는 그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들의 성공방정식을 맹신하며 그들을 따라하면 될것같다는 생각으로 배우는 것이 과연 성공의 답인지에 대해 우리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봐야 한다.
결과 적으로 말한다면 그들의 성공은 모두 '운'이 좋아서 된 것이다.
그들의 성공이 그들의 노력과 노하우 덕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들이 운이 좋아서 지금의 그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찌 보면 이런 글을 쓰는 나는 크게 성공도 못해 본 패배자로서 시샘하여 그들의 성공담을 깎아 내리려는 것이라 비난해도 이 이야기는 한 번은 꺼내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들의 성공은 그 시대와 자신의 의도가 잘 맞아떨어져 사고 없이 병치레 없이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운 좋게 사업에 적용하여 어마어마한 사업가가 된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잘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이상 성공할 필요 없는 거대한 사업가들 중에나 자신의 성공이 100% 운이 좋아 이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듯 운이라는 것이 내 성공에 어느 정도 차지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사업은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봤다. 골목대장 시절에는 '운은 무슨 운. 그래도 다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거지'라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갈수록 지금 이렇게라도 먹고 사는 건 실력도 노력도 아닌 나의 타고난 운이 좋아서였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그 목표가 이루어지기 전과 이루어진 후 지켜가는 앞뒤로 노력이라는 것이 없다면 당연 이룰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노력은 단지 결과물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고 못 이루고를 결정하진 못한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자주 듣던 ‘천재는 1% 재능과 99%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라는 에디슨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라는 생각은 이제 무언가를 시작하는 스타트업에게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살아보니 결과를 ‘노력’으로 증명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위의 명언이 이제야 맨 앞의 단어가 내눈에 들어온다.
‘천재는...’
천재일 경우다.
난 천재가 아니었다.
그의 말은 단지 세상을 맞이해야 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도전하고 극복하라는 의미에서 용기를 주는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약자가 다수인 이 세상에 약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강자들의 횡포에서 보호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수 도 있다.
지금 내 모습이 내가 쏟은 노력보다 못하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 없다.
지금 내 모습이 내가 쏟은 노력 이상이라고 너무 떠벌릴 필요도 없다.
어차피 나는 내 자리로 가게 되어있다.
#그렇게 잘하면
#왜 굳이 영세한
#식당을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