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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 쿡 Feb 02. 2020

나의 식당창업 분투기

1막.3만원짜리 떡볶이

3만원짜리 떡볶이

2000년에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내나이 29세에 회사를 퇴사하고 서울의 변두리 골목에 일식집을 시작했다. 

모텔건물의 1층에 위치한 30여평의 룸과 홀이 있는 한식당이었다.

당시 친구 아버지가 그 모텔의 주인이셨는데 imf이후 경영난과 애매한 한식집 분위기의 식당을 차려놓고도 주방장때문에 골치를 썩던 차에 내가 요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나에게 동업을 제안하셨다.

 친구 아버지는 매장을 투자하고 나는 경영을 하는 방식의 동업제안이었다.  내가 투자 할것은 시설 비용과 영업에 필요한 금액을 충당하는 것이었다.

강남의 한 대형 일식집을 다니고 있었는데 나는 그쯔음 장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라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하지만 당시 내가 가진 재산이라고는 전세보증금 2500만원이 전부였고 그 마저도 반은 은행 돈이었지만 아무 생각없이 모두 그돈을 장사를 준비하는데 쓰기로 마음 먹었다. 

현재 살고있는 집과 앞으로 시작할 업장이 멀어 500만원에 월 30만원 지하로 방을 얻었다. 오래 살지 않을거란 생각에 햇빛도 들어오지 못할만큼 지붕에 맞닿은 높은 창에 비만오면 오수 냄새가 나는 지하로 들어갔다. 

보증금을 뺀 돈으로 영업에 필요한 냉장고,활어수족관, 기물과 그릇들과 식재를 구입했다. 

첫 창업비용으로는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전재산이었고 오픈 준비를 하면서 큰 꿈과 기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곧 부자가 될 거같은 생각에 돈을 마니 벌면 이것저것 사고, 당장 이방부터 빼서 깨끗한 곳에서 아내가 살림을 하도록 하고 싶었다. 

장사 시작전 나름 주변 시장 조사부터 장사에 관한 서적도 보고.. 상권조사도 할 줄 모르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식재료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도 알아 보고 다니고, 식기와 주방 용품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싼 것으로 골라 샀다. 

마케팅이라는 개념조차도 없었지만 매장 홍보를 위해 전단지도 맞추고 지역방송국의 광고도 알아봤다. 

그당시에는 식당을 알리는 방법이라고는 신문에 넣어 돌리는 전단지나 케이블 방송의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광고하는 방법외에는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식당을 하면서 나는 장사와 관련된 모든것을 내손으로 직접 하고 싶었다.(이런 성향은 특히 남자 요리사들이 심하다. 그들은 좀처럼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나중에 잘되면 도움받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다.) 

메뉴판도 한글로 직접 디자인해서 메뉴 업체에 넘겨주고 전단지 내용도 거의 직접 만들었다. 왠지 뭐든 내가 다 만들고 잘해서 대박 식당이되면 남들한테 "내가 다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식당은 모텔 입구 바로 옆이었다. 멀리서 자칫 보면 모텔로 들어가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실내 내부의 지붕에는 샹제리에가 달려있고 모든 테이블은 쇼파로 되어있었다. 한쪽은 또 한식집 룸처럼 방이 있었는데 좌식이었다. 

한마디로 알 수 없는 컨셉이었지만 그당시에는 그런것들이 단점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히려  장점처럼 보였다. 

쇼파에서 손님은 더 편안하게 음식을 먹을것 같았고 모텔 1층에 있으니 모텔 손님도 쏠쏠하게 들어올거라고 생각했다. 전혀 다른 메뉴의 식당이라 동선이 완전히 달라 불편할것 같았지만 자연스럽게 극복할거 같았다. (무엇인가에 꽂히면 단점은 작게 보이고 장점은 크게 보인다. 그눈이 변하는 시점은 내가 망하고 있다고 깨달을때이다.)

'내가 맛있게만하고 친절하게만 한다면 내실력으로 충분히 대박을 낼거야'라고 확신했다.  

(내가 식당을 처음 망한 이유중의 하나이다. 이 식당을 성공시킬거라는 단순한 이유는 머리속에 단단하게 자리잡아 10년이 지나서야 사라졌다) 

함께 같이 일 할 직원도 그동안의 내 경험과 직원 생활을 참고해서 신중히 뽑았다.

'정말 열심히 하는 직원을 뽑으면 되고 그런 직원이라면 정말 잘해줘야지' 하며 어떤 직원이와도 나는 충분히 나를 따르게 할 수 있을것 같았다. 

면접을 보러다니던 입장에서 면접을 보는 사장이 되어보니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이제 진짜 나는 사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모두 다 잘 해결 될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준비가 잘 되었는데 어떻게 장사가 안될수가 있어?'라고 생각했다. 

(준비를 철저히 하면 나는 망하지는 않을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물론 망할 확률을 줄일수는 있지만 장담해서는 안된다. 언제나 오너는 이게 안된다면?을 대비한  플랜 B가 필요하다)

그런 자신감에 나는 그전에 근무했던 최고급 일식집의 메뉴를 준비했다. 

10인분이 아닌 1인분에 9000원이 아닌 90000원이었다. 1인분에 9만원.

2000년에 그것도 서울에서 소득수준이 떨어지는 동네의 골목에서 9만원짜리 회를 판다는것은 초등학교 앞에서 떡볶이 3만원에 파는것과 같다.  

오픈하기 1주일 전부터 대로변 5거리에 나가 전단지 3000장을 돌렸다. 전단지에는 할인 쿠폰을 넣어서 들고 오는 손님에게 할인을 해주는 방법이었다. 아내와 나는 매일 두시간 가량 열심히 돌렸다.

‘이걸 다 들고오면 내가 너무 손해 보지는 않을까?’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2003년 새벽 시장 보러 다니던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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