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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타르트 Jul 06. 2023

거절이 두려운 당신께

열명 남짓한 친척 또래들과는 일년에 한번씩 모임을 갖고 있다.

올해 모일 장소를 의논하던 중 집에서 모이자는 나의 아이디어가 몇몇에게 거절당하고 최종적으로는 호텔뷔페가 낙점되었다.     


집을 주장한 나와 호텔뷔페를 주장한 몇몇의 사정이 달랐을테지만 나는 이 과정에서 엄청난 수치스러움과 분노를 느꼈다.

단지 거절당했다는 그 자체만으로 견딜 수 없는 나 자신을 보며 참으로 오랜만에 긴 시간 “왜”라는 생각에 잠겼다.     


생각할수록 나는 거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매우 취약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나는 거절을 당하면 그 내용이 아닌 나의 존재자체가 거절을 당한다고 느껴왔다.     


집에서 시켜먹는 배달음식보다야 화려한 호텔뷔페가 훨씬 그럴싸한 것이 당연함에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살면서 끊임없이 나를 괴롭혀온 완벽에 대한 강박은 스스로를 실수하면 안되는 사람으로 몰아세우고 끝내는 거절당하는 것조차 힘겨운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거절당하는 것에 이토록 예민하다보니 반대로 부탁하는 것 또한 내게는 쉽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라는 고민을 하던 중 나의 시선이 머무는 하나의 사진이 있었다.   

  


남편은 물고기라 해도 좋을 만큼 물을 좋아하는반면 나는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젬병이다.

우리가 처음 괌에 가서 스노클링을 했을 때 나는 비싼 구명조끼와 무려 코로도 숨쉬기가 가능한 최신식 풀마스크를 장착하고도 그저 남편에게 매달려 움직이기 바빴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세 번째쯤 괌에 갔을 땐 남편 없이도 어느새 깊은 바닷속을 홀로 헤집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여전히 수영은 못했지만 구명조끼와 풀마스크에 의지해 홀로서는 법을 그동안 익힌 탓이었다.     




그때 그 깊은 바닷속에서 두려움이라곤 없이 그저 신나게 브이를 그리고 있는 사진 속 나에게서 “어떻게”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거절당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거라고.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 같던 무언가가 스르륵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기왕 연습하기로 했으니 나는 앞으로 좀 더 자주 부탁을 해보기로했다.

그리고 거절을 당하면 꼭 이같이 기억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이건 내가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상황이 거절당한 것 뿐이야. 

그럴수도 있어!! 그러려니 하자!!’     



당신도 기억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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