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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타르트 Feb 21. 2023

힐링포인트

미국

나같은 쫄보는 꿈도 못꾸는 삶을 사는 커플을 우연히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커플은 한국에서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직업을 가졌었지만 삶이 행복하지 않아 전 재산을 정리하고 오로지 배낭 두 개에 의존해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다.     


언뜻 무모해 보이지만 보통 사람의 용기로는 내릴 수 없는 결정을 한 이 커플의 삶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나와 달리 여유롭기만한 그들의 여행기 하나하나는 내게 대리만족을 주었고, 나는 어느새 이 채널의 새 영상을 꼬박 기다리는 열혈 구독자가 되어있었다.      

    



한겨울 미국 횡단 열차 여행 중인 이 커플은 최근에 새로 구매한 것이 있다며 배낭 안에서 의외의 물건을 꺼내 보였다.     

커피를 마실 때 쓰는 '원두 그라인더' 였는데, 겨울이라 부피가 큰 옷들 때문에 가뜩이나 배낭이 꽉 차서 횡단 여행 시작 전 옷도 여러벌 버리고 왔다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 작은 배낭 안에 생수병만한 크기의 원두 그라인더라니..

내가 볼땐 쓸모없는 물건이 분명해 보였다.     


그들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캠핑 감성 가득한 원두 그라인더를 자랑하며 굳이 이 물건을 구입 한 이유에 대해 '하루의 힐링포인트'라는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그들이 삶의 전부를 넣어 다녀야 하는 배낭은 겨우 50리터 정도로 일주일치의 옷과 신발 몇 켤레만 넣어도 터질듯한 풍선처럼 빵빵하게 차오를 것만 같았다. 

실제로 언젠가 그들이 그 배낭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꺼내 보여주었을 때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그럼에도 그들은 꽉 찬 배낭 속 한구석에 작은 힐링하나를 넣어 다니고 싶었던 것이다.  

   



이따금 내가 오지랖을 부리는 건 꼭 그 원두 그라인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지랖은 미덕이라기보다는 주책에 가까워서 그리 내세울만한 것이 못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지랖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엄마에게 유산처럼 한가득 물려받은 오지랖을 주체못해 여기저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늘 주변을 살피길 좋아했다.        

  

이런 나의 취미가 남들에겐 쓸모없어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오지랖을 부릴 때마다 마치 어린시절 선생님께 ‘참 잘했어요’ 도장이라도 하나씩 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여태 멈추고 살 수가 없다.     


인생이란 배낭 안에 꼭 필요한 것들만 담고 산다면 얼마나 재미없을지 생각해보았다.     

그 안이 온통 옷과 신발뿐이라면 우리를 잠시 쉬게 해줄 힐링포인트는 아마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내 삶의 배낭 속에 굳이 오지랖 하나를 계속 넣어다니기로 했다.          

하나쯤 넣어 다닌다고 해서 배낭이 터져버리진 않을테니까     

가끔 꺼내 쓰면 분명 내 인생에 작은 힐링포인트가 되어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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