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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타르트 Apr 14. 2023

2불짜리 마음

라스베가스

어젯밤 유튜브엔 일주일을 기다려온 빠니보틀의 새 영상이 올라왔다.

빠니보틀은 바하마 공항에 도착해 숙소까지 가는 택시를 잡으려 했는데 택시비 60불을 두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는 60불이 분명 바가지 요금일거라고 의심했다.     

바로 택시를 타지 못하고 시세를 확인하러 공항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그를 보면서, 나는 지난여름 우리의 라스베가스 여행을 떠올려보았다.     



생각보다 낡은 느낌의 라스베가스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공항이 낡았다고 속으로 흉을 본 내게 복수라도 하려는 듯 라스베가스 공항에선 한참동안 데이터가 잡히지 않아 우버를 잡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물가 비싼 미국에서 미리 요금확인이 가능한 우버 말고 택시를 타는 것이 조금 불안했지만, 시간은 이미 자정을 향해가고 있어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예약한 숙소가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는 점이다.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가 지나서 우리는 숙소에 도착했고 택시비를 지불하려는 순간 남편은 어느새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택시기사가 딱 봐도 우리를 초짜 여행객으로 얕보고 일부러 길을 돌아왔다는 것이다.

남편은 당장이라도 택시기사에게 몇마디 퍼붓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영어를 할 줄 몰라 답답함만 가득해보였다.

남편은 내게 이 상황을 빨리 통역하라고 성화였다.

    

이제 막 라스베가스 땅을 처음 밟아본 사람이 대체 길을 돌아왔는지 어떻게 알고 이 난리일까 싶었으나, 아마도 남편은 10분 거리라던 숙소에 20분이나 걸려 도착한 것을 두고 속았다고 확신을 한 모양이었다.     

잔뜩 화가 난 남편과 달리 긴 비행에 지친 나는 한밤중에 낯선 땅에서 택시기사와 말다툼까지 벌일 여력이 없어 그에게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그러자 남편은 물러설 수 없다는 듯 택시기사에게 다가가 온 정성을 다해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투 익스펜시브!!!”     



어리둥절한 택시기사를 붙잡고 남편은 저 한마디 뒤에 온갖 바디랭귀지를 얹어 본인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노력은 베테랑 택시기사 앞에선 전혀 통하지 않았다.

택시기사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척 하더니 결국엔 잘 못 알아듣겠다는 제스쳐를 하고는 유유히 자리를 떠나고 말았다.   

            

나는 멋적게 서있는 남편을 달래서 숙소로 들어갔다.     

     

그 작은 불행에도 화가 많이 났던 남편에게 나는 여행 중 맞닥뜨린 불행에 유독 쿨했던 나의 지난날을 상기시켜주었다.     



와이키키 거리를 거닐다 내 손등 위로 새똥이 떨어졌던 그날일과


취리히에 도착한 첫날부터 짐이 분실 돼 이틀간 꼼짝없이 빈손으로 여행해야 했던 끔찍한 그날을


         

나는 그런 일에 좀처럼 크게 화를 내지 않았다.

속상해하는것보다 남아있는 여행을 즐기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빠니보틀은 결국 52불에 택시를 탔다.

그가 원했던 50불보다는 비쌌지만, 더이상의 실랑이는 벌이지 않았다.     


     

어쩌면 겨우 택시비 2불일 것이다.

남편이 그날 밤 붙들고 놓지 못했던 속상함의 가치는          


우리는 겨우 2불짜리 속상함 때문에 남아있는 여행이 지나간 불행에 물들지 않도록

까짓 2불정도는 쿨하게 더 얹어주며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라스베가스 여행은

가장 쿨하면서도 가장 뜨거웠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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