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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타르트 Feb 23. 2023

딩크로 살기로 했다

쏘렌토

신혼여행은 반드시 이탈리아로 갈 작정이었다.

몇몇 친구들은 이미 대학 시절 방학을 틈타 배낭여행으로 다녀오던 유럽이었지만 내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기에 진작부터 나는 신혼여행지로 이탈리아를 점찍어두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유럽여행에 대한 환상은 막상 떠날 때가 되니 그 시간만큼이나 크게 부풀어있었다.

    

남편 역시 유럽은 처음이라 우리는 두배의 설렘을 나눠 갖고 그 누구보다 들뜬 마음으로 로마에 도착했다.  

우리는 호텔 조식으로 나왔던 이름 모를 다양한 치즈를 먹어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유럽에 와 있음을 느꼈다.

고작 치즈 하나에 감동하던 우리가 유서 깊은 로마 유적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의 흥분이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여행이 무르익어갈 무렵 로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남부여행이 시작되었다.  

    

아말피는 로마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엽서에서나 볼법한 멋진 지중해를 볼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우리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버스투어를 신청했는데 하필이면 이날 비소식이 있었다.

목적지인 아말피를 향해 가는 도중 폼페이에 들를 때까지만 해도 비가 오지 않아 우리는 잠시 희망을 가져보았지만, 폼페이 관광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오르자 속수무책으로 내리는 비 때문에 희망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투어를 이끌던 가이드는 어쩔 수 없이 우리를 쏘렌토라는 도시로 데려갔다.       



비오는 쏘렌토 거리 곳곳에서 상인들은 너도나도 그 지역의 특산품인 ‘레몬젤로’를 외치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들려오는 그 외침은 마치 비내리는 우중충한 거리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해 틀어놓은 노랫소리 같았다.

우리는 그 노래가 꽤 마음에 들었고 금새 같이 흥얼거리며 온통 레몬천국이었던 거리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우리는 어느새 아말피에 대한 아쉬움을 그렇게 잊어가고 있었다.




내게도 아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그날의 쏘렌토 여행을 떠올린다.     


한때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게 아픔일 때가 있었다.

남편이 너무 좋아서 그와 꼭 닮은 아이를 가지면 더 행복해 질것만 같았다.

부모만이 알 수 있다던 그 행복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잠못들던 밤도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일이라 여겨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임신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어렵게 테스기의 두 줄을 보아놓고도 끝내 유산이라 확인받았던 날

나는 이 길을 그만 걷기로 했다.  

     



가이드가 처음 우리를 쏘렌토로 데려간다고 했을 때의 그 실망감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비내리는 쏘렌토 카페에 앉아 애꿎은 커피잔만 매만지며 끝내 아말피에 가지 못한것을 불평만 하고 있었다면 나는 아마 그날의 여행을 그렇게 망치고 말았을 것이다.     

쏘렌토 여행은 분명 내게 차선이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던 내게는 적어도 최선이었다.  

       



아이를 갖고자했던 내 인생길에도 비가 내렸지만 나는 그날을 떠올리며 실망하지 않기로 매번 선택했다.

나는 부모가 되지 못해 놓치는 것들을 아쉬워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남편과 둘이서만 할 수 있는 꿈들을 꾸며 새로 걷는 이 길을 즐겁게 걸어나가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차선의 인생이 최선의 인생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그렇게 딩크로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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