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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타르트 Mar 31. 2023

로또 맞은 내 인생

라스베가스

“우와아아아아아~~!!”   

  

라스베가스의 한 호텔 카지노


십분 째 무료하게 앉아 기계처럼 박자에 맞춰 1초에 한번씩 버튼을 누르던 남편은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같은 시간 다른 관광객들의 게임을 구경하던 나는 남편의 환호성에 재빠르게 달려와 상황을 파악했다.     


모니터에서는 팡파레가 터지더니 화면 가득 금은보화가 날아다니기 시작하고 알 수 없는 숫자가 0.1초 간격으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그 대단하다는 싸이가, 아니 싸이의 할아버지가 와서 내 앞에서 공연을 한다해도 이보다 흥분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우리가 한국에서 못 이룬 부자의 꿈을 미국 땅에 와서 이루는 줄 알고 남편과 나는 부둥켜 안은 채 한동안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쇼가 끝난 뒤 우리는 기계에서 출력된 작은 종이를 뽑아 들고 현금 교환소를 찾았다.      

그런데 세상을 다 줄 것처럼 오두방정을 떨던 기계가 우리에게 쥐어 준 돈은 겨우 20만원 남짓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역시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는 라스베가스에서 이루지 못한 카지노 대박의 꿈을 한국에서 로또로 이어갔다.   

적지 않은 돈을 매주 로또에 바쳤지만 작은 한국땅에서 조차 대박의 꿈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때때로 불평했다.     


우리 동네 편의점에서 로또 1등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거래처 직원이 바닥에서 사들인 주식이 대박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남편의 직장 동료가 유산으로 수억하는 땅을 물려받았다고 했을 때     


내 복주머니만 텅텅 비어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던 지난밤 나는 보았다.

우리의 복주머니가 이미 가득 차 있는 것을


여러번의 눈수술로 혼자서는 손톱하나 제대로 깍지 못하는 남편의 손톱을 깎아주며

이 사람보다 딱 하루만 더 살다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나와   

  

혼자인게 무서워 한여름밤에도 이불을 뒤집어쓰고자는 나보다

딱 하루만 더 살다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남편에게서     


우리의 사랑이 너무 익숙해 그게 행운인 줄도 모르고 살았나보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로또를 사겠지만

이제는 1등에 당첨되지 않더라도 전처럼 신세를 한탄하진 않을 것 같다.          

 


내 인생은 이미 충분히 로또 맞은 인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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