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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타르트 Feb 17. 2023

종합선물세트

스페인

여름이 끝나갈 무렵     

가을의 시작즈음 나는 스페인으로 떠났다.     


스페인은 마치 어린시절 받아본 종합선물세트같은 나라였다.     

몸집만한 상자를 열면 다양한 맛과 모양의 과자가 잔뜩 들어있는..      

어린 나의 꿈의 선물이었던 종합선물세트                    


마드리드에 처음 도착해 당시 호날두가 뛰런 레알마드리드 구장에 앉아, 나는 축구의 나라와 만났다.      

톨레도라는 작은 도시는 마치 몇백년 전 중세시대를 재현 해 놓은 듯 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가우디라는 천재 건축가와 도시 곳곳에서 대화할 수 있었다.         


스페인 여행은 눈이 즐거울 뿐 아니라 입이 더 즐거운 여행이었다.     

스페인 음식은 ‘유럽음식은 맛이없다’는 편견에 맞서 타파스, 하몽, 빠에야 등을 앞세워 유럽음식의 자존심을 홀로 지켜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날 레알광장에서 먹었던 대구요리는 정말 특별했다.     


사실 나는 생선을 즐겨먹지 않아 이곳의 대구요리가 유명하다고 해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요리는 나의 해외여행을 통틀어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요리로 남게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 익힌 대구위에 평범한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것 뿐인데, 그저 이 요리가 우리나라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맛이라 더욱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여행을 돌아보면 대개는 가장 좋았거나 특별했던 것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곤 한다.

여행이 끝난 후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스페인에서 먹었던 대구요리 따위를 대답해 줄 자신이 있다.     



그런 내게, 삶으로 돌아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묻는다면, 이상하게도 좋았던 일보다는 아주 슬펐거나 크게 실수했던 일들이 먼저 고개를 내밀곤 한다.      

    

지난밤에도 그런 기억 하나가 오래도록 내 밤잠을 깨웠다.  


         

잠들기 전 나는 H의 부재중 전화가 생각났다.     

그날 밤 유독 차갑게 울리던 전화벨에 어딘가 마음이 닿지 않아 끝내 받지 못하고 다시 걸지도 못했던 그 전화가..     

다음날 도착한 H의 부친상 문자에 나는 한동안 온몸이 굳어내렸다.     

어쩌면 내가 간절히 필요했을 그 시간에 끝내 응답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는 H에게도 내게도 상처가 되어 마음 한구석에 깊이 남게 되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H는 가끔 이렇게 내 기억을 두드린다.     

나는 H를 위해 잠시 기도를 해주고는, 슬픈 기억은 이번을 마지막으로 그만 잊혀지길 무심코 바랬지만 이내 마음을 돌이켰다.          



삶도 어쩌면 어릴적 내가 받았던 종합선물세트 같아서,     

스페인 여행에서 만났던 대구요리처럼 맛있어서 아껴먹게 되는 과자가 있다면,     

H의 부재중 전화와 같은 인생의 슬픈 기억처럼 입에 맞지 않아 끝내 남겨두는 과자도 있음을,     

그 모두가 다 내가 삶으로 받은 선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앞으로 뜯어볼 상자 안에는 맛있는 과자가 좀 더 많아서      

좋은 기억을 더 많이 안고 살았으면 하고 기도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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