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은 처음이라

전통이라는 이름의 사랑

by 서사이

추석 전날, 은콩이와 함께 바로밑 여동생의 시댁을 찾았다.


관계가 살짝 복잡한데

은콩이 작은 이모의 시어머니댁

그러니까 은콩이 사촌언니의 친할머니댁이 되겠다.


이 기묘한 방문은

은콩이의 사소한 발언으로 성사됐다.


“이모, 나 송편 만들어보고 싶어.”


그 한마디에 매년 시댁에서 송편을 빚는

은콩이 작은 이모가 시어머님께

은콩이 이야기를 전했고 흔쾌히 초대해주신 것이다.


어머님은 매년 설이면 만두를 빚고

추석이면 송편을 빚으신다.


명절 전통이 사라지는 요즘

박물관이나 고궁이 아닌

집에서 송편 빚는 행사란 얼마나 희귀한가.


“나 송편 백개는 만들 거야.”


은콩이는 전날부터

송편 만들 생각에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송편 만들기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송편 반죽은 곱게 간 햅쌀가루로 만드는데

이 반죽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햅쌀 가루는 밀가루와 달라서

찰지게 반죽하기 어려운데

반죽이 잘 안된다고 물을 조금이라도 넘치게 부으면

쪘을 때 흐물흐물해져 맛 없는 송편이 되고 만다.


손 안에서

쉽게 바스라져버리는 반죽 때문에

은콩이는 시작부터 울상이었다.


한 십분은 조물락거려 모양 하나를 빚으면

이번엔 소로 넣은 콩이며 밤이 배 터지게 튀어나와

곤죽이 되어버렸다.


“아이고, 예쁜 딸 낳기 글렀네.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데.”


어머님이 농담을 던지자

은콩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배시시 웃으며 되물었다.


“저는 아이 안낳을 건데요? 그럼 괜찮죠?”


은콩이의 솔직한 대답에

어머님은 마른침을 꿀꺽 넘기시더니

야물딱지다고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모두가 한바탕 깔깔 웃었다.


은콩이는 배가 자꾸만 터지는 송편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머리를 썼다.


그 결과 손가락, 공, 큐브 모양의 송편이 탄생했다.


우리는 완성된 송편을 보고 또 한바탕 깔깔 웃었다.



송편만들기 하나로 빙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한번도 일을 쉰 적 없었던

엄마는 아이들 생일과 명절 만큼은 꼭 챙기셨다.


추석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뒷산에 올라 솔잎을 따고

넷이나 되는 아이들을

우르르 시장에 데려가 새옷을 한 벌씩 사주셨다.


그리곤 낮에 딴 솔잎을 깔고

우리가 제멋대로 만든 송편을 찜기에 쪄주셨다.


솔잎 향이 부엌 문 틈으로 퍼질 때

세상은 더없이 따뜻하고 느긋해 보였다.


세상 가장 맛있는 송편을 입안 가득 물고

커다랗고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빌 때면

마음은 언제나 벅찬 행복으로 가득 차 올랐다.


이제 내가 엄마 나이가 되어보니
그때 엄마가 내게 남겨주려 했던 게

무엇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명절 전통이 점차 사라지는 요즘
가정마다 송편을 빚든, 만두를 빚든

마음을 나누는 의식 하나쯤 있는 건 좋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그것은

부모와의 유대를 만들어주고
부모가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따스한 기억으로 남을 테니까.


그리고 그 따스한 기억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자양분이 될 테니까.


그날 저녁, 은콩이가 내게 말했다.


“이모, 나 내년에 또 할래. 다음엔 더 예쁘게 빚을 거야.”


나는 대답대신 웃었다.


다음 명절엔 또 어떤 추억이 만들어 질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주방 식탁 위에 몇 개 남지 않은

은콩이의 삐뚤빼뚤한 송편


그 모양이 어쩐지,
보름달보다 더 예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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