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말해요.

따뜻한 말한마디

by 서사이

독감의 계절이 시작됐다.

시작은 불행히도 은콩이였다.


가족 모두 예방접종을 마쳤지만

그날따라 미열이 있어 일정을 미룬 은콩이


바이러스는 어떻게 알았는지

가장 취약한 은콩이를 공격했다.


은콩이 목소리로 조용할 틈 없던

집안이 금세 낯설게 변했다.


낭랑한 아이의 목소리 대신

끙끙 앓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해열제를 먹이고 수액을 맞았지만

독감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은콩이는 뜨거운 몸을 뒤척였고
엄마는 시간 간격을 계산하며

해열제를 먹이고
자정이 넘도록 차가운 수건을 갈아주며

은콩이 곁을 지켰다.


감염 때문에

나는 내 방으로 쫓겨났다.


집 안의 모든 불이 꺼진 새벽
불을 밝힌 곳은

오직 은콩이의 이마와

엄마 손이 닿는 자리뿐.


엄마는 말없이, 묵묵하게,
그 긴 새벽을 뜬눈으로 버텼다.


다음날, 아침

나는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침 죽이라도 끓이려고.


그런데 웬걸.

은콩이 엄마가 쌩쌩하게 아침을 준비 중이었다.


“너 괜찮아?”

“당연하지.”


밤을 꼬박 지새우고도 활기찼던 덴 이유가 있었다.


새벽녘 은콩이 이마에

찬 물수건을 얹어주려는데

숨을 작게 몰아쉬던

은콩이 입에서 나온 한마디가 마음을 두드렸다고.


“엄마… 고마워…”


그 한마디에 가슴이 뭉클해져서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단번에

며칠째 쌓였던 피로가 사라졌냐고?

천만에.


완전히-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나.


“아기인 줄 알았더니 다 컸지, 뭐야.”


고마워, 라는 말이

가장 무서운 이유가 그거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



당연한 말 한마디가

밤을 버티고

하루를 견디고

어떤 희생도 각오할 용기를 준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말 한마디도 신중해야한다는 규범 속에서 살아간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삼키는 게 성숙함이라 배우면서.


그래선지

고맙다는 표현에 더욱 인색해진다.


먼저 고맙다고 말하면

감정의 주도권을 잃을까 봐
약해 보일까 봐
상대에게 내 마음을 너무 많이 내준 것 같아 보일까 봐
우리는 주저없이 입을 닫아버리곤 한다.



하지만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전하고

상대의 마음까지 움직인다면


그건

관계의 밀도를 올리는 시작은 아닐까.


오늘 누군가에게 해야할

고맙다는 말은 놓친 적은 없나?


고맙다는 표현에

지나치게 인색한 하루는 아니었나?



지친 몸과 마음 하나 살리는 데

거창한 말은 필요 없다.

고맙다는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8화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 속에도 생각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