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으로 말해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상대가 내 말에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걸 느껴본 적 있는가?
분명히 시선을 마주하고 있지만
공허하게 떠있는 눈동자는
먼산을 향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묻게 된다.
“지금 내 말 듣고 있어?”라고.
마음의 창이라 불리는 눈에 관한 이야기다.
글을 쓰던 내 옆에서 열심히 뭔가 그리던 은콩이가
그림 한 장을 내밀었다.
열린 하늘과 구름 그리고 무지갯빛 바이킹
창이 많고 높은 건물과
그 건물을 지키는,
꼭 어린 왕자를 닮은 고양이 한 마리
이것만으로도 귀여운 상상력이었지만
반전은, 이 모든 그림이
눈 안에 담겨 있다는 거였다.
이 그림의 제목은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 속에도 생각이 많다.’
그림 밑에는 꼬마 화가의
상세한 설명이 친절하게 덧붙여 있다.
“우와, 은콩이는 이런 게 보여?”
“응. 당연하지.”
“그럼, 맞혀봐. 이모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심히 지켜보던 녀석이
빙그레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연다.
“모르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 하는 생각?”
“뭐어?”
딱밤을 부르는 대답이다.
요 녀석이.
은콩이는 요즘 사람들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생각이 보인다고 한다.
친구들과 놀 땐
나랑 노는 게 재밌는지 지루한지
엄마하고 얘기할 땐
엄마가 내 얘기에 집중하는지
아니면 딴생각에 빠져 있는지
생각은 머리로 하는 거지만
그 표현은 온몸으로 나타나고
특히 눈에서 읽을 수 있다고.
나는 속으로 뜨끔 했다.
가끔 은콩이와 게임을 하면서
몸은 은콩이 옆에 있지만
머리론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열거하며 조급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누군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어른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아이는 당신의 마음을 모를 만큼 어리숙하지 않다.
특히 당신의 눈빛에서
아이들은 직감적으로 모든 걸 읽고 있다.
생각은 머리에서 시작되지만
진심은 눈빛에 담겨 흘러가므로
아이가
“나 좀 봐봐.”라고 말한다면
그건 단순히 집중해 달란 요청이 아니다.
마음을 연결해 달란 신호다.
이건 단지 아이와 어른의 관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연인, 친구 그리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진정한 관심과 사랑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눈빛에서 시작된다는 걸
몸이 아니라, 영혼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걸
그래서
아이와 마주 앉으면
핸드폰도 다른 생각도 내려놓으려고 한다.
아이가 자신이 만난 첫 세상에서
존중받았고 사랑받았다는 기억으로
성장하길 바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