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없다 vs 괜찮을까?
'대신 욕 먹어 드립니다'로 축약되는 여러분의 세기말 귀염둥이. 오늘도 한탕 거하게 해먹고 말레이시아로 튈 궁리만 하는 진정한 이 시대의 참기자로 살며 IT 스타트업 업계를 유령처럼 배회하던 중 꽤 오래된 고민에 대해 불현듯 썰을 풀고싶어 이렇게 한땀한땀 글을 적어봅니다.
바로. 스타트업 인재 쟁탈전입니다. 참고로 이 글은 사견이며, 말 그대로 수박 겉핡기로 현상을 볼수 밖에 없는 점이라는 점 분명히 밝힙니다. 무언가 감히 해법을 드리는 것도 아니며, 그저 이런 생각은 어떤가..에 대한 순수한 제안입니다.
# 마당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 이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스타트업의 마당발'이라는 표현. 글쎄요. 간혹 업계를 보면 스스로를, 혹은 타인이 누군가를 지칭하며 '스타트업 업계의 마당발'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저는 이런 표현에 좀 회의적입니다. 왜냐. 물론 창업 생태계도 따지고 보면 거기서 거기인 것이 일부 맞습니다. 한때 카이스트와 서울대 라인이 휩쓸며 자기들끼리 다 해먹으며 요리조리 끌고 밀어주는 분위기 강했지요. 개인적으로는 옐로모바일이 한창 피치 올리던 2010년대 초중반에 그런 분위기가 강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일부 맞는 말이에요. 특히 성공한 창업가들은 성공 전부터 이미 깊은 유대를 가진 상태일 가능성이 높고 따지고 보면 모두가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투자 단계에서 주로 보이는 현상이지요. 그 연장선에서 마당발로 인정할만한 선수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삐딱하게 회의적인 이유는. 이 바닥이 정말 엄청나게 빠르게 돌아가고 생태계 진입과 아웃이 엄청나게 빈번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다이내믹한 시장에 마당발이 있다고? 파도가 매일 몰아치고 수많은 스타트업이 명멸하면서 쓸려가고 쓸려오는데? 불가능해요.
그런 이유로 마당발이 실제 존재한다면 그건 옛날 이야기이거나, 혹은 마케팅 수사적 표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둡니다. 근엄한 표정으로 스타트업을 쳐다보지도 않다가 갑자기 들어오게 된 이들이 만든 허상이라고 봐요.
거리를 좀 두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물론 본연의 네트워크는 존재하기에 마당발이라 칭하는 이들의 강력한 저력은 존재하겠지만, 그들의 말이 온전히 업계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말 그대로 상상속의 유니콘이거든요. 마당발이라는 것이.
근데 인재유치 이야기를 하며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인재를 구하려는 스타트업도, 또 취업을 원하는 인재들도 의외로 자칭타칭 마당발이라는 사람들에게 많이 휘둘리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당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전제로 하기 위해 요 이야기를 먼저 해봤습니다. 역시 저도 틀릴 수 있으니, 고것도 감안해주세요.
#복지가 능사일까
개발자 전성시대가 열리며 많은 스타트업들이 복지를 내세우며 인재를 유혹합니다. 인센, 보너스도 포함됩니다. 한때 이를 다루는 언론 기사들도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지요.
충분히 매력적인 인재유치 정책이라는 것 인정합니다. 분명한 효과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 부분에서 스타트업들의 출혈경쟁이 벌어지는 것과, 체리피커가 등장한다는 것과, 식상하다는 점입니다.
출혈경쟁. 네. 최근 만난 스타트업은 훌륭한 개발자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기업 사이즈를 상회하는 어마어마한 보상을 내걸었습니다. 질문했어요. 괜찮으냐? 돌아온 대답은 훌륭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감수할 수 있다. 근데 술잔을 든 손이 심하게 떨리더군요. 스타트업답게 투자를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일으켰는데 어쩌면 당연한 쫄림이지요...심지어 이게 동종업계에서 경쟁이 붙으면 답이 없어요. 설상가상으로 네이버와 카카오 등 거인들이 출혈경쟁을 벌이기 시작하면? 네. 일반적인 의미의 스타트업들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건 한계가 뚜렷해요.
간혹 체리피커도 등장합니다.
이제 성과와 보상이 확실한 세대들이 우리 경제의 주류입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파업하잖아요. 노력한만큼 받아야 한다는 것. 맞는 말이에요.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하고요.
문제는 경영진이 보는 성과의 특정과 직원들이 보는 것은 다르다는 것.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져요. 투닥거리며 감정싸움까지 번지죠. 하지만 여기까지는 이겨내야 해요. 소통하고 타협해야죠. 근데 솔직히 이런 말 하고싶지 않지만 그 간극에서 체리피커들이 상당히 높은 확률로 나타나요. 국룰이죠. 이들은 실제 노력하고 성과를 받아야 하는 이들에 묻어가며 교묘한 정치질도 합니다. 조직은 하향평준화가 되고 스타트업은 휘청거립니다.
체리피커는 물론 극소수에요. 대한민국이 그렇게까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로 멀쩡한 절대다수의 인원들이 감염되어 조직이 훅 가는것. 막장으로 가면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이 됩니다. 좀비죠. 8년간 이 업계를 취재하며 꽤 봤습니다.
마지막으로 식상하다는 점. 네. 말 그대로 이제는 식상해요. 유통기한이 지나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동기부여
결론적으로 복지는 좋은 인재를 유치하기에 단기적으로는 좋은 해법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계가 뚜렷해 보입니다. 물론 이거라도 해야 합니다. 근데 이제는 식상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더 근본적인 방법은 없을까. 동기부여라는 방법이 있지요. 열정으로 뭉친 사람들이 모여 으쌰으쌰 나아가는 것. 리더는 그들에게 비전을 보여주고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시도하는 것. 가장 이상적이죠.
이를 위한 방법론도 참 많습니다.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내부의 응축력을 키우기 위한 세련된 전략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대부분 꾸준히 성공하고 있고요.
많은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본인의 매력과 카리스마 및 매력을 바탕으로 동기부여를 일으키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의 비전까지 세우거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철저한 조직문화의 날을 강렬하게 벼리고 있어요. 조직원들에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의미있는 일이며,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일이며,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길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어필하고 또 성공하고 있어요.
근데 여기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동기부여를 꾸준히 일으키는 요인을 한 조직이 이상적으로 길게 끌고가는건 사실 참 어려운 일이거든요.
첫번째 주화입마는 잡스병에서 옵니다. 사실 여러 경로로 오지만 이때도 옵니다.
동기부여를 일으켜 조직원들의 응축력을 키우려던 초기의 순수한 의지가 서서히 경영진의 마음속에서 우월함으로 굳어지는 순간입니다. 내부보다는 외부의 시선에 더 신경을 쓰게되고, 본인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이 사라지며 조직은 경색됩니다.
조직원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이 단계가 오면 이미 조직은 무너진다고 봐야 해요. 솔직히 눈꼴시렵고, 바보처럼 보이거든요.
두번째 주화입마는 지속성입니다. 잡스가 왜 위대한 CEO가 됐을까요. 동기부여에 있어 미친 재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코딩도 못하지만 세계적인 개발자들을 휘어잡았어요. 이런 능력은 사실 매우 희귀한 능력입니다. 아주 길고 지속적으로 끌고가는 것이 일반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단언합니다.
물론 이 두개의 주화입마를 넘어서는 리더들도 있어요. 근데 소수인데다 제가 볼때는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은 사람들이에요. 이를 일반적인 수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건 욕심이지요. 리더는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겠지만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오랫동안 광적으로 끌고갈 수 있는 리더는 많지 않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상황이 낫겠지만, 이 역시 어렵습니다.
공부도 잘하면서 운동도 잘하고 교우관계도 좋다? 하나만 잘해도 대박입니다. 전설상의 유니콘입니다.
#주변부는 어때요
쓰다보니 엄청 시니컬하네요. 딱히 그런 뜻은 아닌데...다만 저는 기자기 때문에 제3자의 시선에서 좀 냉정하게 스타트업을 볼 수 있습니다. 내부 사정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많은 이들의 부침을 봤고. 그렇기 때문에 몇몇 포인트를 짚어보는 수준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썰을 푸는거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노력을 통해 스타트업 전성시대를 달리는 리더님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거듭 밝힙니다. 사실 엄청나게 존경해요. 전 절대 못하는 일이거든요. 이 글도 수박 겉핡기일 수 있겠네요.
그러나 이 말은, 이 제안은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스타트업이 인재를 유치한다면 대부분 개발자겠죠?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얻으려 스타트업은 복지와 동기부여를 번갈아 사용하는데, 이왕 사용할 거면 한번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가는 것은 어떨까요.
먼저 개발자가 우선이 아닌 비개발자를 포함한 동일한 베네핏. 특히 현재 남아있는 직원들에 대한 다양한 복지를 고민하는 것. 이 역시 단기적으로 출혈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어차피 들어갈 리소스를 비틀어 쓰는 거죠. 개발자에 대한 공격적인 베네핏보다 더 낮아도 됩니다. 비교대상이 많이 없거든요.
전 효과가 있을 것이라 봅니다. 잠재적 입사자인 우수한 개발자의 눈에서 보자고요. 그 조직은 부담없이, 나아가 전체가 어우러질 수 있는 조직인겁니다. 당장 본인에 대한 베네핏은 낮아도 모두가 동일한 선에서 출발한다면 분명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비개발자들을 위한 복지를 따로, 즉 세분화시키는 액션플랜이 어떨까요. 회계파트는 재무재표 강연의 주기적인 개최 및 지원. 경영파트는 또 업에 걸맞는 특화된 베네핏을. 일률적인 지원보다는 오히려 세부적인 베네핏이 각 개인에 미치는 파급력은 더 클 수 있다고 봅니다. 자신이 더 케어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이 외에도 많은 아이디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복지와 동기부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나오는 다양한 아이디어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제 천편일률적인 접근보다는 방향을 비틀어 급소를 찌르거나, 혹은 맞춤형 복지의 새로운 가능성 타진이 어떨까요.
세상을 바꾸는 조직에서 풍족한 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지만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게 하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잡스놀이만 할 수 없잖아요. 단물이 떨어지면 떠나는 조직원들을 탓할 필요도 없고요. 그 연장선에서 좀 냉정하게, 파격을 노리며 인재를 유치하면 어떨까.....뭐 그런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