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 장편소설
책을 읽는 사람이 늘어났다. 책 읽는 행위를 멋지게 여기는 ‘텍스트 힙’의 시대가 정말로 오긴 왔다. 책 읽는 사람이 확실히 늘어난 건 반갑지만 팔리는 책만 팔리는 현상은 여전하다.
올해 출판 시장에서 정말로 핫했던 이름은 아무래도 ‘박정민’이다. 먼저, 박정민이 몇 해 전에 쓴 <쓸 만한 인간>이 역주행했다. 거기에다가, 그가 만든 출판사 무제에서 선보인 <첫 여름, 완주>, 그가 추천한 <혼모노>와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까지, 무엇이든 ‘박정민 묻은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박정민 파워’를 등에 업고 역주행 중인 책이 하나 더 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그 주인공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지독하게 못생긴 여자’와 ‘잘생긴 남자’의 사랑 이야기다. 여자는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늘 부당한 대접을 받지만 아름답지 못한 외모를 곧 ‘죄’로 취급하는 세상의 비뚤어진 욕망을 담담하게 인정한다.
그냥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회가 매겨둔 못생긴 여자의 죗값을 착실히 치른다. 그녀는 잘생긴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나이가 같은데도 언제나 남자친구에게 말을 높이고 그의 앞에서 늘 전전긍긍하며 한없이 몸을 낮춘다.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못난이’였던 친구가 고통스러운 다이어트 끝에 ‘예쁜이’로 거듭나자 다시는 예전과 같은 사이로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작가의 이런 상황 설정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젠더 감수성이 떨어진다거나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의 배경이 1980년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정도 불편함은 슬쩍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박민규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왜 이런 주제의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한창 신혼이었던 시절, 작가의 아내가 물었다.
“그래도 절...사랑해줄 건가요?”
“그러니까...제가 아주 못생긴 여자라면 말이죠.”
작가는 아내의 질문에 대한 솔직한 답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마찬가지로 저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또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을 한다 해도 잔인한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어쩔 수 없이 미남과 부자가 좋은 당신이라면 그런 저 자신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해 잘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에겐 너무나 먼 <가야 할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못생긴 여자는 그냥 웬만큼 못생긴 여자가 아니다. 여자 주인공이 얼마나 못생겼는지,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순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중략) 카레가 식을 때까지 망연자실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말하자면, 그때까지도 꽤 많은 못생긴 여자들을 봐왔지만 나는 그녀처럼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세기를 대표하는 미녀를 볼 때와 하나 차이 없이,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에게도 남자를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궁금했다. 함께 놀이공원에 간 남자한테 “나 때문에 부끄럽지 않았나요?”라고 물을 정도로 못생긴 여자라는, 외모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전혀 없는 그 여자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정말로 숨이 멎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눈에 사람들이 알아차릴 정도로 못생긴 여자가 있긴 한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없지…. 저 정도면 과장이 너무 심한 거야. 사람 생긴 거야 다 거기서 거기지…. 웃으면 다 예쁜 구석이 있고 찡그리면 못생긴 거지 뭐….’ 하고 포기하려는데 오래된 얼굴 하나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가정 선생님의 얼굴이었다.
작가는 정말로 지독하게 못생긴 게 어떤 건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다. 작가가 생각하는 못생긴 여자의 정의가 내가 떠올린 선생님의 얼굴과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상이 정해놓은 보기 좋은 얼굴의 정의를 기준으로 삼으면 아마도 작가가 상상한 얼굴과 내가 기억해낸 얼굴이 상당히 흡사할지도 모른다.
무려 450쪽에 달하는 책을 거의 다 읽을 무렵이 돼서야 내가 가정 선생님의 얼굴을 간신히 떠올렸던 건 내가 그녀를 ‘놀랄 만큼 못생긴 여자’로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얼굴의 생김새가 어땠건 가정 선생님은 지금까지도 ‘세상에서 영화 이야기를 가장 맛깔나게 하는 사람’으로 각인돼 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 똑같이 등장하는 장치가 하나 있다. 바로 하얀색 깃털이다. 한없이 가벼운 햐안색 깃털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에서 시작된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의 발밑에 놓여 있던 깃털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나는 실제로 그 영화를 보기 전부터 <포레스트 검프>의 깃털을 기억했다. 다정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영화의 주요 장면을 찬찬히 소개하며 가벼운 깃털의 움직임을 손가락으로 정교하게 그려내던 교탁 앞의 선생님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박민규 작가는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겉모습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하고, 멋진 외모를 가진 사람은 무분별하게 찬양하는 한편 못생긴 사람을 멸시하는 건 ‘부럽거나, 혹은 부끄러워서’라고. 사람들은 항변한다. 번듯한 외모가 찬양받는 건 아름다움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 때문이라고.
그러나,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겉모습에 너무도 쉽게 현혹되는 건 그 너머의 깊은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없는 탓인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꿰뚫어 볼 능력이 없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 수치심을 감추려고 오히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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