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못 잤던 탓인지 오늘은 푹 자고 일찍 일어나어제보다납작하지만 똑같은 바게트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은 후 아침 7시쯤 숙소를 나왔다. 마지막 날인데 일찍 출발한 이유는 혹시나 오늘12시에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의Butafumeiro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Butafumeiro는대성당 천장에 매달린 은색의 큰 향로를위아래 좌우로움직여향을 피우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작년 프랑스길에서금요일 오후에도착해참석한 저녁 미사에서봤었다. 그땐 이 향로 의식이 매일 있는 줄 알고귀한 줄 모르고 봤었는데, 알보고니 특정한 날, 또는 어떤 목적으로 향을 피울 헌금을 헌납한 사람들이 있는 날에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일요일이니 혹시나 볼 수 있을까 기대를 한 것이다.콤포스텔라까지내리막길이고 평평한 마을을 지나는 무난한 20km니까 4시간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조금 빠른 속도로 걸었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길에서 누군가 내 영어이름인 Isabel! Isabella!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모자를 치켜세우고 보니, Miraz 알베르게의 그분이었다. 저녁에 파스타를 나눠주시고 그다음 날 같이 카미노를 걸으셨던 그 호주에서 오신 봉사자 분. 계속 이렇게 긴 수식어를 사용할 수 없어 다음에 뵈면 꼭 성함을 여쭤봐야지 했는데 오늘 드디어 알게 된 성함은Mrs.Camel.
나를 보고 반갑게 부르신 이유는 의외의 감동이었는데, 지난번 길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앞으로 걸어가는 내 뒷모습을 찍으시곤 너무 잘 나와 간직했다 우연히 만나면 꼭 보내주고 싶으셨다고 하셨다. 그렇게 우린 카미노의 마지막날을 함께 걷게 되었다.
우린 누군가 내 뒷모습을 이처럼 예쁜 눈으로 담고 있었다는걸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걸으며 나눈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넓은 주제를 왔다 갔다 했다.카미노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 정말 달변가였는데 미세스카멜 또한 그러했다. 카멜 여사와 나눈 얘기는 물론 그 미국에서 온 봉사자분들 이야기로 시작했다.
짧은 시간에 난 미국인 봉사자분들의 간략한 삶과 봉사를 오게 되신 구체적 내용까지 알게 되었는데, 특히 내게 출발하기 전 세 가지 질문을 하셨던 빨간 티셔츠 할아버지는 미국에서 장례업을 하고 계시고 코로나 때 예기치 않게 많은 돈을 축적하여 이번에 남동생(내게 티트리 족욕을 해주신)과 여자친구 되시는 분(아들이 피스컵이고 며느리가 고려인인)과 함께 봉사를 하러 오신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다시 한번 일등석을 타고 왔다는 말도 빼놓지 않으셨다. 정말 놀라신 모습이 조금 귀여우셨다. 난 일등석 가격을 검색해 본 적이 없어 도대체 얼마길래 하고 저녁에 찾아보니 편도로 이천만 원 정도를 비행기값으로 썼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도!!!! 하는 소리가 들렸었다. 그래서 그렇게 놀라셨구나. 그제야 공감이 갔다.
그리고 이전에 Miraz에서 같이 봉사를 했던 봉사자들과 있었던 에피소드도 있다.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인지 기억이 안 나신다고 하시면서, 그 레이디는 절대 쓰레기를 내놓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을 이리저리 피하는데 아주 영리하고 얄미웠고 컵하나 씻는 것도 아주 꺼려했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봉사자는 여권을 잃어버려 마드리드까지 가서 여권을 다시 발급받아 집으로 돌아갔었고, 또 어떤 봉사자는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이상하게 자신의 나이를 감춰 이 사람의 나이를 알아내기 위해 첫 아이는 몇 세에 낳았는지, 결혼은 언제 했는지, 은퇴는 했는지 등등 생애주기를 통해 유도질문을 했지만 끝끝내 그분의 나이는 알 수가 없었다든지 하는 에피소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미세스 카멜은 이번이세 번째 카미노 길이라는 것도 알려주셨는데, 세 번 모두 좋다고 앞으로도 또 오실 거라고 한다.걸으며 치와와 한 마리, 덩치가 큰 마을 개 한 마리가 우리를 쫓아오며 인사해 준다. 미세스 카멜처럼 "이 나무는 지난번 봤던 나무네, 아직도 여기 이렇게 꽃나무가 있네"라며 산티아고 가는 길을 세세히 기억할 만큼 산티아고에 계속 찾아오고 싶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Arzua에서부터 느낀카미노 순례길의 낯선감정은 미세스 카멜을 만난 덕분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이야기를하는 미시즈 카멜 덕분에 2시간을 쉼 없이 웃으며 걸었다.마지막으로 걷는 아쉬움이나 멜랑콜리한 기분도 잊어버렸다.
그리고갑자기어느 카페에 멈춰 섰는데, 작년 프랑스 길을 걸을 때 이곳에서 잠시 쉬었던 곳이라하시며 혹시 같이 커피를 마실 것인지 물어오신다. 난 아쉽게도 12시 미사를 갈 예정이었기에 계속 걷겠다고 말씀드린 후 그렇게 인사를 나누었다.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 거란 생각을 못했다. 우린 같은 날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니 당연히 당일 오늘처럼 우연히 만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다시 만나지는 못했고 각자의 숙소에서 다시 한번 메시지로 안부 인사를 나눈 건이 전부였다.
다시 혼자가 되어 나무 숲을 걸으니 작년 지나간 길이 다시 생각이 났다. 눈에 익은 나무를 보니 '그때도 여길 지나며 예쁜 나무다.'라고 했었지 하며 프랑스길에서의 마지막 날을 떠올려 봤다.
Santiago de Compostela, 한 순례자도 막 도착했다.
드디어 콤포스텔라로 들어가는 입구라고 할 수 있는 내리막 길을 지나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표지판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간을 보니 11시 10분. 미리 예약한 숙소에 짐만 맡긴 후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가면 12시 미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미사에 참석하겠다는 목표는 어젯밤 마지막 날에 대한 감상 따위를 다 이겨버렸다.
숙소에 도착한 후, 어제 미리 온라인 체크인을 한 것 덕분에 빠르게 체크인을할 수 있었는데 버즈 한쪽을 바닥에 떨어뜨려 이 작은 것을 찾느라 바닥에 10분을 소비해 버렸다. 그래도 일단은 대성당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지난 12시 3분. 문을 지키고 있는 보안요원이 12시가 지나 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안은 이미 만석이라 30분 일찍 왔어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하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수백명은 안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어 한적한 광장
그래서 저녁에 다시 와보기로 하고 미련을 가득품은 채 대성당광장으로 왔다. 광장을 가로질러 대성당이 한 폭에 담길 수 있는 구도로 사진을 찍고, 광장에 앉아 순례길 완주를 만끽하는 순례자들을 모습을 찍었다.성당은 매우 커서 얄팍한 휴대폰으로 한 모습을 담는 것은 조금 어렵다.
그리고 순례자 사무실로 향하여 순례 완주증을 받았다. 작년 프랑스길 완주 후에는 손글씨로 완주증을 만들어 주었던 것을 기억하며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2023년의 산티아고 순례길 사무실은 도착하자마자 QR코드로 내 정보를 입력한 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컴퓨터로 출력된 완주증을 받는 은행 같은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작년 손글씨로 받았던 완주증이 더 좋았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오래 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는 순례자들도 많다고 하니 모든 것엔 다 좋고 싫은 것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 좋은 쪽을 자주 봐야 하는 것인가 보다.
대성당 가는 길 골목 옆 집엔 강아지와 오리가 사는 곳일까
완주증도 받았고 미사 시간인 저녁 7시까지는 시간도 많이 남으니 순례자 사무실에서 나와 골목을 천천히 둘러보며 다시 숙소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만들어 먹었다.어제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생각했던 대로 관광객이 많은 콤포스텔라라고 해서 일요일에 마트 문이 열려 있지는 않았다. 어제 미리 식량을 사두길 잘했다. 물론 레스토랑이나 바를 갈 수도 있지만 혼자 레스토랑에서 시켜 먹는 것은 어색하다.
일요일 오후는 거리가 한적하다. 산티아고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을 먹고숙소에서 짐을 정리하니 슬슬 저녁 6시가 다 되어간다. 이번에는 늦지 않게 6시쯤 다시 대성당으로 향했다. 7시 반에 시작하는 미사는 이미 7시 전에 자리가 만석이었다. 30분 전에 도착해 앞 좌석에 앉았지만 아쉽게도 기대했던 향로 행사는 없었다. 그렇다면 내일 12시 미사를 다시 와야겠네, 하는 간단한 생각으로내일 다시 와보기로 한다.
숙소로 내려가는 길, 콤포스텔라는 대성당을 중심으로 미로 같은 골목이 이어져 있고 골목 곳곳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로 가득 차 있다.
산티아고 골목길, 한 쪽으로 Bar와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작년3일 동안 콤포스텔라에 머물며 구석구석 걸어본 탓인지 오늘은 시내 구경이 처음 같은 호기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치 마을 산책 나온 것처럼 골목 사이사이가 낯설지 않고 편안한 느낌이었다.천천히 걸어보니 산티아고는 6개월 전과 똑같았다.
숙소에 돌아오니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주방 식탁에 앉아 일기를 쓰는데 체코 피터 아저씨를 다시 만난 것이다. 서로 신기하고 너무 반가웠다. 아저씨는 산티아고에서 Finisterra와 Muxia까지 다녀오기 위해 이삼일을 40km씩 걸어 오늘 산티아고에 도착했고 내일 새벽 일찍 Finisterra를 향한다고 나중에 사진을 보내겠다고 하셨다.
나는 내일 밤 11시 55분비행기를 타기 전 하루 종일 시간이 있으니 내일 대성당 오전 미사를 드리고 시내를걸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