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수 - 아침 물 한 잔의 승리

by 하루오

산은 산이고, 물은 돈이다. 대기업은 봉이 김선달의 선두에 섰다. 자본 권력은 물이 돈이 되는 사태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집에 정수기를 들이거나 생수를 사 마시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정수된 물과 생수가 식수를 차지하는 동안 오찻물이 잊혔다. 오찻물은 보리차를 일컫는 경상 방언이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대체로 물을 끓여 마셨다. 보리차와 옥수수수염차 사이에서 결명자차가 냉장고 구석의 오렌지 주스 유리병을 차지하려고 고군분투했다. 우리 집에서는 무엇을 마셨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오찻물’이 엄마의 음성으로 각인된 것을 보면 보리차를 주로 마셨던 모양이다. 혹은 인근 약수를 떠 마셨다. 생수의 시대가 열릴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부산에서 대구로 이주했을 때, 집 주변에 약수터가 없는 것이 생소했다. 분지에서 산은 따로 스케줄을 잡아 마음먹고 가는 곳이었다. 내게 부산(釜山)은 이름 그대로 산이 많은 곳이었다. 수차례 이사를 다녀도 동네에는 꼬박꼬박 산이 있었고, 그 산에는 개울이나 약수터가 있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수 없었다. 산과 물은 한 동네였다.


약수터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체육공원 같았다. 운동 삼아 갔고, 놀이 삼아 갔고, 가끔은 주말 아침 일찍 가족 모두 갔다. 감당할 수 있는 물통의 크기가 성장의 척도였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은 나를 따라 잡으려 애썼고, 나는 따라 잡히지 않으려 애썼다. 나는 또래에 비해 왜소했고, 동생은 또래에 비해 살집이 있어서 우리 경쟁은 치열했다.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는 튼튼해지기 위해서, 혹은 심심해서 약수를 실어 날랐다. 엄마는 흡족해 하셨다.


약수가 항상 식수를 댈 수 없기에 보리차는 필수였다. 필수인 것들은 공기처럼 존재감이 없었다. 기억을 뒤져봐도 지푸라기 하나 건져낼 게 없다. 물 쓰듯 마셔도, 약수 물에 오찻물 타도, 그야말로 물은 물이었다. 그러나 자취를 해보니 물이 식수이기 위해서는 노력 한 보따리가 필요했다. 엄마가 부지런하셨던 것이고, 그 부지런함은 빈 방에서 갈증으로 지각되었다.


내가 가진 식습관 중 유일하게 쓸 만한 것은 수분 섭취였다. 하루에 식수 1.5리터 안팎을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 식전에 물 한 잔, 틈틈이 한두 잔, 성실했다. 차가우면 몸에 좋지도 않거니와 많이 마실 수 없으므로 찬 물을 마시지 않았다. 여름에도 식수는 상온에 뒀다. 부지런히 마시기 위해서 엄마처럼 부지런히 준비해야 했지만, 귀찮았다. 귀찮으면 안 되어서 귀찮게도 부지런했다.


기숙사나 고시원에서 공용 정수기물을 마시는 동안 물을 끓이는 것과 연이 끊겼다가 원룸에 거주하며 생수로 갈아탔다. 물을 끓이려면 어차피 보리차나 옥수수수염차 티백을 사야 했으니 천 원도 안 되는 돈으로 귀찮음을 상쇄하는 게 나았다. 생수 2리터 들이 한 묶음 12리터면 열흘쯤 마셨다. 양 손에 한 묶음씩 들고 오면 3주는 넉넉했다. 24kg을 들고 276미터를 걸어와 3층 계단을 올라왔다. 약수를 길러오는 데 돈을 들여야 하는 아이러니는 별 수 없었다.


생수는 행사 제품을 샀다. 업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도, 약수들이 심심찮게 오염되었다는 뉴스를 접했기에 대장균 검출 정도의 뉴스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독극물이 들어 있거나 악취가 나지 않는 한 물은 물이고, 물맛은 물맛이었다. 제품마다 맛 차이를 감별해 내는 사람이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아니, 무시해도 좋을 것을 인지할 수밖에 없는 예민함이 오히려 측은했다.


동네할인마트 간 경쟁이 정점에 치달았을 때는 생수도 배달되었다. 처음 서너 번은 배달 최소 금액을 충족시키며 생수 48리터씩 주문했다. 신발장 옆에 생수 네 묶음이 층층이 쌓여 있으면 든든했다. 배달원에게는 미안했다. 배달원은 나 때문에 12리터들이 물 네 묶음을 매장에서 봉고에 실어야 했고, 그것을 이곳까지 운전해 와서 또 3층까지 올려야 했다. 나는 최소 배달 금액을 맞추기 위해 다른 물건도 함께 주문했으니 배달원은 최소 세 번을 오르내려야 했을 것이다. 배달 봉고가 정차하는 소리가 들리면 냅다 내려가 주문한 물건을 함께 옮겼다. 그렇게 미안함을 상쇄해도, 미안함은 편리함만 못했다.


어느 시점부터 생수는 배송 품목에서 빠졌다. 인터넷으로 생수를 주문할까 싶다가도 택배 기사의 평균 배달 단가가 500원이라는 기사를 접하고는 마음을 접었다. 누군가가 내게 500원을 주며 24kg짜리 물을 3층까지 두 번 나르라고 시킨다면 거절할 것이다. 하물며 택배 기사는 지점에서 트럭에 싣는 작업에 전화/문자를 남기는 잔일까지 더해야 했다. 이번에는 내가 같이 들고 올라올 수 없으므로 미안함이 간당간당하게 편리함을 이겼다. 나는 배달 기사를 배려한다는 당당함으로 어딘가의 집 앞에 쌓여 있는 생수통을 보면 혀를 찾다.


생수배달.jpg 쯧쯧


아마 생수 배송이 안 되고 맞은 첫 겨울이었을 것이다. 생수를 끊었다. 생수 묶음 끈이, 시린 손을 파고드는 불편함 천 원어치를 넘어섰다. 4리터 들이 주전자에 보리차를 끓였다. 어쩌다 양파 껍질을 말려 마시기도 했다. 내 식수 사정을 안 엄마는 칡, 우엉, 상황버섯을 말려 보내주셨다. 지난 설에는 말린 비트가 추가되었다. 칡, 우엉, 상황버섯을 열일곱 번 우릴 때 비트는 한 번 우릴까 말까 했다.


칡, 우엉, 상황버섯 우린 물의 존재감은 보리차보다 고급스러웠다. 식수의 미덕은 무(無)맛에 있다. 칡, 우엉, 상황버섯은 무(無)에 진한 향만 입힘으로써 ‘오찻물’의 진의를 일깨웠다. 향은 구수하고 끝이 둥글어서 목 넘김이 순했다. 칡과 우엉은 진할수록 좋았지만 우엉은 빨리 쉬었다. 칡은 수시로 마셨고, 우엉은 겨울에만 가끔 마시거나 반 주전자만 끓여 마셨다. 상황버섯은 두세 번 우려내도 향과 빛깔을 유지했다. 가격을 검색해 본 이후 갈빛이 희미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우려냈다. 고작 식수여야 하는데, 상황버섯은 내 돈 주고 사기에는 황송했다.


하루오 칡.jpg 비트는 혈관 건강에 좋다면서.... 그러나 나는 약이 필요한 게 아니라 물을 마시고 싶을 뿐이고.


탄산수는 마시지 않았다. 탄산수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감’의 미덕이 없었다. 그렇다고 음료도 아니었다. 탄산수의 존재 의의는 어중간한 허영에 있었다. 자기 미각의 독창성을 자랑할 수 있는 액세서리인 것이다. 한 때 공짜로 먹을 일이 있어서 꾸준히 마셨었지만, 익숙해져도 밥을 말 수 없어서 식수로 대우하지 않았다.


쓰고 보니 내 식수 생활은 호화로웠다. 상황버섯이 없어도 식수로서 만만찮은 라인업이라는 생각에 괜히 우쭐해진다. 생각해 보면, 최하위 계급과 최상위 계급은 보리차와 에비앙 이나 탄산수 정도의 격차가 날 뿐이다. 잘나 봐야 고작 석회를 거르거나 탄산을 집어넣은 물이라니, 하찮은 격차가 정의로워 보였다. 오히려 사람 따라 보리차가 더 선호될 수도 있다.


인간의 몸은 70%가 수분이므로 한국(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식수 보급이 문제라지만)에서라면 최하위 계급과 최상위 계급의 격차는 나머지 30% 안에서 차이 날 뿐이라는 엉뚱한 계산이 섰다. 하긴 옛날 옛적 임금님이라고 물에 금 타서 마시진 않았을 테니, 아니, 마신들 무의미할 테니, 식수의 지니 계수는 극단적으로 낮아진다. 식수만큼은 인생을 물 먹이지 않은 셈이다.


식수야말로 약간의 귀찮음으로 자본 권력에 비벼볼 수 있는 유일한 전장이다. 생수를 마시든 수돗물로 보리차를 끓여 마시든 물은 물이다. 노후 된 수도관과 수도 용품에서 발생하는 중금속이 걱정된다면 생수를 끓여 마셔도 크게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성실하게 잘 마시려 한다.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 팀의 우승이 30년을 채운 만큼 내가 승리하는 경험은 참 오래되었다. 아침 마다 승리 한 잔, 사소한 혁명으로 온 몸이 촉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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